마지막 항암을 앞두고...
내 인생의 불청객이었던 유방암으로 모든 일이 계획적이었던 내 삶에 모든 우선순위가 바뀌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던 항암도 이제 마지막 항암을 남겨두고 있다. 너무도 낯설고 무서웠던 '항암'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내 삶에 조금은 자연스럽게 녹아든 느낌이다. 5번의 항암이 진행된 3개월의 시간은 조금씩 다른 느낌의 힘듦을 겪은 시간이었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첫 번째 항암 후, 살기 위해 먹어야 했지만 음식 냄새도, 맛도, 컨디션도 따라와 주지 않았고 식탁에 기대어 앉아 울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건강하고 맛있는 상을 차려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이 밥을 거절했고, 지하 백 층의 동굴을 파고 들어가 앉기도 했다. 두 번째 항암 후, 너무 먹지 않아서 한 발짝 내딛을 힘도 없을 때, 남편은 라면이라도 먹자며 끓여주었고 한 두 젓가락 먹으며 조금 기운을 내보기도 했다. 항암을 하고 하루 후부터는 기력이 확 떨어지고 각종 부작용이 내 몸에 나타난다. 너무 기운이 없을 때 동네에 사는 친한 언니가 사다 준 소고기를 한 입 베어 먹으니 작은 조각의 소고기 육즙이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정말 기적 같은 기운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내 몸은 기적처럼 기운이 생기고 다음 주사를 맞기까지는 그럭저럭 살만했다.
조금 기운이 나기 시작하는 열흘쨰부터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공원을 찾아 브라우니와 남편과 같이 산책을 시작했다. 그 공원은 나무 그늘 아래에는 앉아서 쉴 벤치가 없는 공원이라 남편은 간이 의자를 항상 챙겨서 다녔고 조금의 경사라도 있으면 나는 앉아서 쉬기 일쑤였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수박열매... 누군가 수박을 먹고 뱉어낸 씨앗이 귀한 열매가 되어 자라고 있었다. 이 작은 열매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3번째 항암 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집 밖을 나설 때는 혹시나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4번째 항암을 마쳤고, 5번째 항암을 끝내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멘털로 인하여 이틀간 밥을 안 먹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때, 미국에 살고 있던 언니가 출장으로 한국에 왔다.
언니는 출장 일정이 어찌 될지 몰라서 나에게 말을 안 했고 혼자서 방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을 때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밥 안 먹어. 나가'라고 겨우 소리를 냈고 언니는 '괜찮아. 괜찮아'라며 나를 토닥여 주었다. 내 기억 속에 항상 논리적이고 딱딱한 언니였는데 엄마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했던 내게 언니의 손길은 엄마의 손길보다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1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언니는 돌아가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따뜻함을 내게 안겨주었고,
그 순간은 어떠한 치료보다 강력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암이 아니었더라면, 항암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들을 많이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이 고통스러운 여정 속에서
나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소중한 인연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암이 내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