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피센트 엄마와 함께...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추석이 지나고 10월 말이 되면, 우리 집은 늘 분주해졌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집 안 곳곳을 핼러윈 장식으로 꾸미고, 아이들의 친구들을 초대해 소소한 파티를 열고, 11월 말에는 가족끼리 모여 추수감사절 저녁을 함께하며, 12월이 되면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고 트리 점등식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계절 전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내가 암 투병 중이었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몸은 무겁고, 머리카락은 모두 빠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내 모습에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조차 낯설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 아픔보다 아이들의 표정이었다. 밝고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의 눈에 어느 순간부터 걱정과 조심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함께 아프고, 함께 싸우는 법이지만... 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능한 한 ‘일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예전처럼은 못하겠지만, 우리 방식대로 계절을 준비해 보자. 작게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핼러윈 장식을 꺼내려던 어느 날.
문 앞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언니였다.
면역력이 약한 내 상태를 걱정하며 멀찍이 서 있던 언니를 남편이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였고,
우리는 서로 멀찍이 서서, 조심스러운 거리를 두고 눈물부터 고였다.
면역력이 약해진 나를 위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 언니는 그저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고, 나도 같은 방식으로 답했다. 그 몇 분간의 침묵은 어쩌면 그 어떤 대화보다 진한 위로와 연결을 느끼게 했다.
언니가 돌아간 후, 남편과 나는 조용히 집 안을 장식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이 계절을, 이 시간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며칠 후, 우리는 1호기, 2호기, 3호기의 친구들을 각자 한 명씩만 초대해 조촐한 핼러윈 파티를 열었다.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병원이나 운동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던 나였지만, 민머리를 가릴 겸 예전의 코스튬을 다시 꺼내 입었다.
바로, 아이들이 좋아했던 ‘말레피센트’
검은 뿔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자, 거울 속의 나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다시 ‘말레피센트’가 되어 있었다.
모자 안에는 머리카락 한 올 없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부끄러움의 상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용기를 내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날, 너무나도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집 안에 울려 퍼진 웃음소리에 나는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이 작은 파티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다시 따뜻한 계절로 기억되길...’
그렇게 조촐했던 핼러윈이 지나고, 아이들은 어느새 마음도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말은 없었지만 아이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느껴졌다. 엄마가 다시 계절을 함께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안정이었음을.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겨울 준비가 시작되었다.
12월의 첫날, 아이들은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장식 상자를 꺼내왔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하나씩 장식을 꺼내 트리에 걸었다. 반짝이는 오너먼트와 리본, 그리고 손으로 정성껏 적은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카드까지 트리에 달아주었다.
아이들은 트리 앞에서 작년과 똑같은 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내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이토록 소중한 겨울이구나.’
그리고 올해, 우리는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겨울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예전엔 1호기와 2호기를 데리고 매년 연말이면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곤 했다.
하지만 3호기가 태어난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발레공연이었기에 이번 겨울의 마무리는 온 가족이 함께 다시 그 공연장을 찾는 것이었다.
몸이 회복된 건 아니지만,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목까지 잠겼던 늪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오듯,
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계절을 살아내고,
일상 속의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조심스럽게 하루를 살아간다.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작고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들의 웃음, 남편의 따뜻한 눈빛, 지인들의 눈물 어린 침묵, 그 모든 것이 나를 지탱해 주는 겨울의 빛이라는 것을.
이 계절, 나는 말레피센트였고, 엄마였고,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의 시간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