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루틴 – 무기력에서 벗어난 나만의 방식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허명구 아저씨를 아는가?
산속에서 벌을 키우며 사는 그는,
말벌이 보이면 무조건 달려가 제거한다.
양봉업에 말벌은 천적이기에,
그에게는 말벌을 잡는 것이
곧 생업을 지키는 일이다.
등목을 하다가도,
진행자와 대화를 하다가도
말벌만 보이면 망설임 없이 뛰어간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며
‘말벌 루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벌이 보이면 아무 생각 없이
뛰어가 제거하는 것.
그 단순한 행동 속엔 삶을 지키려는
본능과 집중이 있다.
루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한다.
"일어나기 싫어"가 아니라,
시간이 되면 그냥 일어나는 것.
그래야 내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다.
퇴사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생활 리듬은 점점 무너졌고,
드라마를 밤새 보다 보면 아침 7시가 되어 잠들고,
눈을 뜨면 어느새 오후 3시였다.
하루를 날린 것 같아 자책했고,
그 기분은 무기력함으로 번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게임을 하며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그렇게 나태한 루틴이 반복됐다.
몸은 불어나고 마음도 점점 무거워졌다.
분리수거라도 하러 나가면 괜히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부여잡고 릴스를 보다 보면
"성공하려면 무조건 이걸 해라",
"20대에 부자 된 비결" 같은 영상들이 나온다.
멍하니 보다가 휴대폰 화면이 꺼지고,
그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씻지 않은 얼굴, 떡진 머리, 눈곱 낀 눈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휴대폰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그게 내 퇴사 후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무기력에 잠식되어 있던 어느 날,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딸 요즘 퇴사하고 많이 힘들지.
정말 아프고 힘들겠지만
인생 공부한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세상은 정말 넓어. 이런 일쯤 겪어도 괜찮아.”
엄마는 직접 말로 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문자로 마음을 전하셨다.
그 문자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추락하면 안 됐다.
그날 이후, 작지만 단단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
2. 제때 밥 먹기
3. 독서 5분하기
4. 러닝머신 5분타기
루틴을 만들 때 일단 오후에 일어나면
하루 루틴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전에만 일어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처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은 무리였다.
그래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
처음엔 12시, 그다음엔 11시, 10시…
그러다 결국 오전 8시에 일어나면
하루루틴이 적절히 맞았다.
그리고 일어났을 땐 꼭 나를 칭찬했다.
“오늘도 잘 일어났어. 해냈다.”
아침을 먹는 것도 루틴에 포함했다.
아침을 안 먹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잡념이 많아졌다.
먹기 싫어도 밥을 꼭 챙겨 먹으며
뇌에 연료를 넣었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단 5분만 읽기로 루틴을 시작했다.
책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마음을 조금씩 회복했다.
그리고 운동으로 러닝머신을 5분이라도 탔다.
처음엔 몸이 약했지만 점점 체력이 붙고,
앉아서 책을 읽을 때 아팠던 허리에는
코어 근육이 생겨 점점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데일리 노트에 적었다.
하지 않은 것 같아 자책할 때마다,
노트를 보면
‘나는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9시 기상, 10시 산책,
11시 디자인 참고자료 보기,
12시 점심,
2시 낮잠,
8시 헬스장 러닝 10분…
이런 사소한 기록들이 쌓여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내 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날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매일, 꾸준히 살아내고 있었다.
루틴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냥
"지금은 이 루틴 시간이다.
나가자! 하자!"
말벌이 보이면 바로 달려가는
허명구 아저씨처럼,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먼저 움직였다.
시간이 되면 고민하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것.
그게 마음을 붙잡고
루틴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가기 싫은 마음, 늦잠 자고 싶은
욕심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그 루틴이 진짜 '나의 루틴'이 되었다.
루틴은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다.
작고 단순한 걸 매일 하는 것,
그게 진짜 루틴이다.
그것이 무기력에서
나를 구한 방식이었다.
생각은 줄이고, 움직임을 늘려야 한다.
말벌 보면 바로 뛰는 허명구 아저씨처럼.
그냥 하는 것. 그게 루틴이다.
이제, 당신의 루틴을 시작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