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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일해주면 안 되는 이유

호의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빛난다.

by 서른리셋

누구나 한 번쯤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도

주변에서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학생 때 용돈을 벌기 위해서든,

성인이 되어 잠시 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든,

아르바이트는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가까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잠깐의 노동이었지만, 그 속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곤 한다.


나 역시 대형마트에서 모기 퇴치 용품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고객이 모기 스프레이를 구매하면서

모기향도 1개만 살 수 있는지 물었다.

판매용은 20개 단위부터였고,

마침 행사용으로 준비된 모기향 1매짜리 증정품이 있었다.

나는 사은품으로 건네드렸고

그 순간만큼은 잘 응대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객은 사은품을 더 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5개만 더 주세요. 어차피 증정용이잖아요.”
그 순간 깨달았다.
무료로 주는 작은 호의가 고마움으로 끝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무료로 도와주면 대부분 고마워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사함 보다

당연히 해주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렵다고 안내드리면

간단한 디자인인데 그거 하나 못해주냐며

서운해하거나 심하면 원망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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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업장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디자인이 필요하다.
돌잔치 모바일 초대장, 초등생 아이의 반장 선거 포스터,

식당 문 앞에 붙여두는 영업시간 안내문까지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것들도

모두 디자인의 영역이다.
그래서 요즘 디자인 요청은 정말 다양하고 많다.


디자인의 필요가 많아지다 보니

요청한 디자인 이외의 추가 요청이 생긴다.

예를 들어 처음엔 로고 디자인을 의뢰한 후

추가로 필요한 스티커 디자인까지 요청을 하는 것 이다.

고객은 “로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

로고를 활용해 스티커도 간단히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내 디자인을 좋아해 주었다는 고마움에

흔쾌히 무료로 도와주기도 한다.
특히 초보 디자이너일수록 이런 부탁을 쉽게 수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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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스티커 아래에는 귀여운 손글씨체로

연중무휴 영업한다고 넣어주세요.”
“스티커 시안을 받았는데 배경 색상이

저희 업장 박스색과 맞지 않네요.

색상을 연한색으로 바꿔주세요.” 등
끝없는 추가 요청이 이어지고,

어느새 무료 노동이 반복된다.
심지어는 “저희 업장에서 판매하는 음식 사진인데

배경만 지워줄 수 있나요?”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요청까지 들어온다.
분명 처음에는 로고 제작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사진 편집까지 하고 있는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추가 요청이 들어왔을 때

반드시 2가지 방법을 안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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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추가 요청하신 스티커 디자인은

서비스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서비스로 1회만 제공이 가능하며

추가 수정은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은 유료로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추가적으로 요청주신 스티커 디자인 제작 가능합니다.

디자인 비용은 5만 원이며 수정은 3회 가능합니다.”

고객에게 이렇게 미리 안내해 두면 추가 작업에는

당연히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대부분의 고객은 추가 디자인을 요청할 때

디자인이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추가 디자인이 바로 마음에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그래서 막상 추가 디자인을 받아보면 마음에 들지않아서

계속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작은 부분도 쉽게 오해가 된다.


대가 없이 선의로 도와주는 일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그 마음을 상대방이 고마움을 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허탈하고 씁쓸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어떤 부탁이든,

주고받는 데에는 분명히 선이 있어야 한다.
호의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빛난다.



tempImageeYLhni.heic 글 속에 사용된 로고 이미지는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예시이며,본문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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