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 끝에서 다시 일어서다
13년.
내가 한 길을 걸어온 시간이었다.
나의 직업은 교사,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었고, 자부심이었고, 삶의 전부였다.
직장의 팀장으로서 나는 늘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졌다.
아이들은 물론 직원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애썼다.
나는 회사를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하혈이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몸을 먼저 챙기세요.”
병원에서 돌아온 날,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더 이상 예전처럼 일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였다.
하지만 퇴사 후 찾아온 건 회복이 아니라, 더 깊은 절망이었다.
몸이 회복되어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는 몸으로 13년 동안 해온 일을 이어가기엔 너무 위태로웠다.
게다가 현실은 더 가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6명.
1명의 사람이 아이 1명도 낳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뉴스마다 저출생 문제를 다루었고.
주변의 어린이 기관은 하나둘씩 노인복지관으로 바뀌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의 수는 해마다 줄었고, 초등학생 수도 급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의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내 자부심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차라리 회사가 싫었다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디자인? 포토샵? 한 번도 켜본 적이 없었다.
비전공자가 로고 디자인을 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면서, 집에서도 내 속도로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로고 디자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 무모함이 나를 이끌었다.
아마 조금만 더 이성적이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아무리 로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문의는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도 단 한 건의 의뢰도 없었다.
‘차라리 교사로 다시 직장에 들어갈까?’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예전처럼 버틸 수 없었고,
설령 건강해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불안이라는 지옥 속에서 나는 매일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어른이 하루 종일 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끄러웠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직장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책임자, 관리자, 성실한 팀장이라는 타이틀은 퇴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0이었다. 완전히 비워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이었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나쁜 게 없어져야 좋은 게 들어오는 거야.”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잖아.”
긍정의 말을 수천 번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닫힌 이상,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위로로만 들렸다.
나는 메말라가고 있었고, 내 가족도 함께 메말라갔다.
우울에 잠긴 나를 달래고 출근하는 가족,
새벽까지 울던 나를 걱정하며 함께 밤을 새우던 사람들.
나는 그저 미안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기엔 불안이 나를 매일 삼켰다.
모두가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외면의 뒤에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밥을 사주며 “괜찮다”라고 말해준 가족,
함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찾아주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나를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도록 도와준 고마운 친구도 있었다.
돈도 못 벌고, 울기만 하고, 나조차 나를 미워하던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나도 나를 지키지 못했던 그때,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울면서도 일했다.
눈물이 키보드 위로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새벽에 클라이언트의 수정 요청을 확인하며 또 절망했다.
‘이 일이 나랑 맞는 걸까?’
‘새벽까지 일하다니.. 직장에선 이런 일은 없었는데 점점 나쁜 선택만 하는 걸까?’
수없이 자문했다.
그래도 포토샵을 켰다.
울면서도 로고를 그리고, 울면서도 메일을 보냈다.
“울어도 돼. 하지만 손은 멈추지 마.”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낮에는 친구 회사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밤에는 내 사업을 준비했다.
눈물로 모니터가 흐려져 화면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첫 번째 5점 리뷰를 받았을 때, 나는 또 울었다.
이번엔 감사의 눈물이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제 브랜드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그건 내가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로고 10개, 50개, 100개를 팔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울음의 빈도는 줄었지만, 일의 강도는 커졌다.
그래도 이제는 울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내가 해냈다’는 작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로고 디자인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비전공자가 로고 300개를 판매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 8천 명의 지역 마케팅 계정을 운영하고,
홈페이지 제작 사업까지 확장했다.
울면서도 일을 마친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 울고 있는가.
끝없는 실패와 갑작스러운 현실 앞에서
세상이 당신을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가.
나도 그랬다.
그 마음이 2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끝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 끝은, 당신이 만든다.
지금 침대에서 일어나 산책을 해라.
상쾌한 공기와, 당신을 위해 비추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껴라.
이 햇빛은 당신이 웃을 때도, 울 때도, 늘 같은 자리에서 비추고 있다.
햇빛이 변하지 않듯, 세상도 어쩌면 그대로일지 모른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일 뿐이다.
지금 책 한 권을 펼쳐라.
. 책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
지역 도서관은 무료다. 돈도 들지 않는 0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책으로 위로를 받고,
날마다 한 장씩만 읽으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
그 한 문장이 내일의 당신을 일으켜 세울지도 모른다.
이제 깨어나고, 다시 시작하라.
그건 지금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할 수 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