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라는 말의 폭력
멈춰버린 시간, 버리지 못한 밥그릇
누군가의 집 한구석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밥그릇이 놓여 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털 뭉치 하나를 차마 쓰레기통에 넣지 못해, 휴지에 고이 싸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사람도 있다. 현관문을 열면 들려오던 "다녀왔어?"라는 인사에, 더 이상 "왈!"하고 대답해 줄 존재가 없다는 적막. 그 침묵의 무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형벌이다.
지난해 6월 말, 나의 세상도 한차례 무너져 내렸다.
13년을 함께 했던 나의 작은 가족, 스피츠 '다은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하얀 털이 눈부시게 예뻤던 아이. 나의 30대와 40대를 온전히 함께 채워주었던 그 아이가 떠나던 날, 나는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았다. 아니, 닫을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데 밥을 팔고 손님을 맞는 일상은 불가능했다.
이틀 뒤, 억지로 가게 문을 열었지만 나는 결국 무너졌다. 텅 빈 가게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곁에서 숨 쉬던 그 따뜻한 체온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할 만큼 빠르게 돌아갔다. 나의 시간은 다은이가 떠난 6월의 그날에 멈춰 있는데, 밖에서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개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 유난이다"라고 혀를 찼다.
오늘의 '감정비망록'은 그 잔인한 위로 아닌 위로에 상처 입은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떠난 아이의 밥그릇을 부여잡고 울고 있을 모든 반려인들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잃었을 때 느끼는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펫 로스 증후군'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을 넘어선다. 식욕 부진, 불면증, 죄책감, 그리고 심한 경우 환청이나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심리적 외상이다.
해외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반려인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는 '자식을 잃었을 때'**나 '배우자와 사별했을 때'와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비반려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말일 수도 있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반려동물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내밀한 목격자이자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배우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관계에는 늘 조건과 기대가 따른다. 하지만 강아지는, 고양이는 다르다. 내가 돈을 못 벌어도, 내가 늙고 병들어도, 내가 세상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날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준다. 그 무해하고 순수한 100%의 사랑.
다은이 역시 그랬다. 내가 가게 일로 지쳐 돌아오면, 녀석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무릎에 턱을 괴어주었다. 그 따뜻한 체온 하나가 내 하루를 구원했다. 그런 존재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개 한 마리"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내 영혼의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은 고통이다.
상실의 아픔은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다은이가 떠나고,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슬픔이 닥쳐왔다. 다은이와 친자매처럼 자랐던 둘째 강아지 '봄이'의 방황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부터, 봄이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침대 밑, 소파 뒤, 베란다 구석구석을 냄새 맡으며 돌아다녔다. 마치 숨바꼭질하는 언니를 찾으려는 듯, 낑낑거리며 다은이가 쓰던 방석에 코를 박고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밥도 먹지 않고, 좋아하던 산책도 거부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이를 '동물들의 펫 로스'라고 말한다. 개들도 동료의 죽음을 인지하고 깊은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봄이의 그 처연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봄아, 언니 이제 없어... 언니 하늘나라 갔어."
그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봄이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베란다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았다. 마치 다은이가 산책을 마치고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는 듯이.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가족이 모두 앓았다. 나는 울고, 남편은 한숨을 쉬고, 봄이는 언니를 찾아 헤맸다. 그것은 온 집안이 슬픔이라는 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시간이었다.
나를, 그리고 수많은 펫 로스 경험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반려동물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의 '몰이해'와 '경시'다.
다은이를 보내고 가게 문을 닫았을 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니, 부모상 당한 것도 아니고 개 죽었다고 장사를 쉬어?"
"유난 떤다. 13년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네."
"너무 슬퍼하지 마. 예쁜 애로 한 마리 새로 사면 금방 잊혀져."
그들은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겠지만, 그 말들은 내 가슴을 난도질하는 칼날이었다.
'새 거 한 마리 사면 된다'니.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그 천박한 인식에 치가 떨렸다. 다은이는 고장 나면 새로 사는 가전제품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우주에 단 하나뿐인 내 딸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애도의 계급'이 존재한다. 사람의 죽음은 슬퍼하고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동물의 죽음은 '가볍게 넘겨야 할 해프닝' 정도로 취급된다. 직장에서 반려동물 장례 휴가를 쓴다고 하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며 비아냥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반려인들은 자신의 슬픔을 억압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해야 할 시기에,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너무 유난인가?" 하며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고 숨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박탈된 비탄(Disenfranchised Grief)'이라고 부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이 억압된 감정은 결국 마음의 병으로 곪아 터지게 된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나는 다은이의 옷을 버리지 못했다. 녀석의 털이 묻어있는 담요도, 꼬릿한 냄새가 배어있는 장난감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다. 누군가는 "청승맞다", "집착이다"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나의 치유 과정이라고 믿는다.
펫 로스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참지 말고 펑펑 울어야 한다. 아이의 사진을 보고 말을 걸고, 밥그릇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해야 한다. "빨리 잊으라"는 말은 폭력이다. 잊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마음속 안전한 곳으로 '잘 보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그랬어", "아직도 강아지 털 뭉치를 지갑에 넣고 다녀"라는 그들의 고백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반려동물의 장례 문화가 정착되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수의를 입히고, 화장을 하고, 유골함을 집에 두는 행위.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가족으로서 예우를 갖추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의식(Ritual)이다.
다은이가 떠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남겨진 '봄이'였다.
언니를 잃고 우울해하는 봄이를 살리기 위해, 나는 억지로라도 산책 줄을 잡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봄이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울면서도 사료 봉투를 뜯어야 했다.
그렇게 봄이와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봄이가 풀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다은이는 떠났지만, 녀석은 내게 '사랑하는 법'과 '이별하는 법',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갔다. 13년간 녀석이 내게 준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단단한 옹이처럼 박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릴 너에게
아직도 가끔 가게 문을 열 때면, "다녀왔어!"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돌리며 달려올 다은이의 환영이 보인다. 그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지만, 이제는 울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무지개다리 너머, 고통 없는 그곳에서 다은이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내가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 마중 나온 다은이와 다시 만나 "엄마, 왜 이제 왔어!" 하며 내 품에 파고들 것을 믿는다.
세상의 모든 다은이와,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반려인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슬픔은 유난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 작은 생명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그러니 부디, 죄책감 갖지 말고 마음껏 그리워하시라. 사랑했던 만큼 아픈 것은 당연하니까.
그리고 혹시 주변에 반려동물을 잃은 이가 있다면, 섣부른 조언 대신 그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그 아이 덕분에 참 행복했겠구나. 네가 끝까지 지켜줘서 그 아이는 정말 행복했을 거야."
그 따뜻한 한마디가, 무너진 세상을 다시 짓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13년.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그 긴 시간 동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딸이었던 다은아.
네가 떠나고 가게 문을 닫았던 그 이틀동안, 엄마는 세상이 멈춘 줄 알았어.
아직도 옷장 속 네 옷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한 엄마를 용서해.
사람들은 "개 한 마리"라고 쉽게 말하지만, 너는 나에게 온 우주였고, 사랑 그 자체였단다.
지금도 이별의 아픔 속에 울고 있을 수많은 반려인 여러분.
당신의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만큼 아이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평안할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남겨진 봄이와 쉬리, 하리와 함께 씩씩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사랑한다, 다은아. 영원히.
Written By Yoodaram
["사진 속 다빈이는 저의 딸이기 이전에 고유한 사생활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본 게시물의 사진은 아이에게 게재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다빈이 본인의 명확한 동의를 구한 후 소중하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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