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로보다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타로 상담가이다. 타로를 굳이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다. 심지어는 나의 내담자와 타로 상담을 할 때도 더 이상 이 주제로 타로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까지 끝까지 파헤쳐 주는 사람이다. "저 사람 왜 저래? 다시는 상담을 하러 오지 말라는 뜻인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담자 중에는 다시는 그 주제로 상담을 하러 오지 않는 분도 꽤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자주 오시는 분도 꽤 있다.
어제는 영상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타로 명상을 위해 2장을 뽑아서 해석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날 뽑은 카드가 심상치 않았다. 2장의 카드를 뽑는 이유는 어떤 질문이든 한 가지 시각만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한 장단점을 함께 보기 위해서다.
한 장의 카드는 평소대로 나의 일을 잘하겠고 내 생각대로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나머지 한 장의 카드는 컵 5번 카드였다. 이날 어떤 감정이 휘몰아칠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컵 5번 카드는 생각보다 깊은 마음의 상심이 일어날 수도 있고 관계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결과로 인해
그날의 일들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숨어있는 카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시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작은 의견 차이가 있었다. 요즘 편집자는 일에 지쳐있는 상태여서 나는 속으로 최대한 내 감정은 자제하는 쪽으로 일에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날 나온 조언 카드는 운명의 수레바퀴, 정의, 황제카드였다.
"어차피 가끔 있었던 일이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다스리면, 이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지." 나는 일단 참았다. 내 감정도 파도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더 엉망진창일 수 있으므로.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 식사로 맛있는 음식을 배달해서 먹었다. 타로를 본 것과 안 본 것의 차이라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타로의 조언을 통해 문제를 조금 더 완화시킬 수 있다는 부분이다. 나는 타로의 여러 기능 중에서도 현재에서 미래를 바꾸는 역할을 선호하는 편이다. 왜냐면 모든 미래가 긍정적으로 펼쳐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그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성공의 열쇠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래를 보면서 좋다, 나쁘다로만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비밀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타로가 가진 힘이다.
물론 타로를 본다고 해서 숨겨진 비밀을 모두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타로를 보지 않고도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은 지금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혜안이 있는 것처럼, 타로는 각 장의 의미 이외에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직업적인 전문 지식도 유용하다. 해석을 조금 더 현실적이며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다.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쪼개고 쪼개서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상담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오늘 하루, 잠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타로를 보는 것은 하루를 보내기 전에 미리 쓰는 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누구든 종교의 자유가 있고 무엇을 믿든 안 믿든 그의 자유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정말 이상한 삶을 살고 있어도 그의 삶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자신의 이야기는 모두가 다 고유한 콘텐츠가 된다. 타로를 보든 안 보든 상관은 없다. 그리고 올바르게 살든 조금 더 흐트러진 삶을 살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문제 될 것도 없다. 단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일 수는 있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신념을 억지로 권할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타로를 보든 안 보든 우리의 삶은 고유한 의미가 있다.
타로를 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부지런하게 관심을 가지는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