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에 대하여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뜨악해지는 느낌이 있지 않을까? 나는 가족이 아닌 타인 앞에서는 내 직업에 대해서 타인이 어떤 선입관으로 보든 상관없지만, 왠지 가족 앞에서는 나의 정체(?)를 말하고 싶지가 않다. 어쩌다 나를 검색해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될 수 있으면 몰랐으면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을 가족이 알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나의 직업을 숨기고 싶은 걸까. 사실, 나의 직업은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없다. 타로를 강의하기 때문에 강사이기도 하고 타로 상담을 할 때는 타로 상담가이다. 글을 쓰고 있으니 작가이기도 하겠고, 예전의 직업으로 책을 2권을 냈으니 잘 팔리는 책은 아니었지만, 작가는 작가겠다.
브런치에는 출간 작가라고 체크를 안 했던 이유도 나의 예전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약간은 의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지금의 직업과 예전의 직업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에 오히려 예전의 나의 활동이 지금의 직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다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였거나.
어쨌든, 타인은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엄청 헷갈릴 필요도 없겠고 관심도 없을 텐데, 나 혼자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왜 나는 가족에게는 현재의 나의 직업에 대해서 말하기가 꺼려질까.
가족에게는 기독교가 유일신이고 신앙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걸 너무나 잘 이해하기에 나의 직업적인 견해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기가 어려워져서 괜히 서로 멀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평행선이라고나 할까.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마음은 같아서 서로 속상한, 그런 기분을 알까?
그러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서로 깊이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부분이다.
나는 나의 직업에 대해서 먼저 말하지 못했고, 가족은 나의 직업에 대해서 캐묻지 않을 뿐. 그렇다고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무리를 주는 일을 하고 있지도 않은데,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진다.
오히려 나의 상담을 받은 분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이제 앞으로 어떡할 것인가? 나는 최대한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먼저 고백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숨기고 싶어도 우연히 탄로(?)가 날 수도 있겠지. 서로의 삶을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방식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나는 분명히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 알고 있다.
기독교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고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가족은 내가 늘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완성되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연민의 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겠지.
나는 기독교의 방식으로만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지만, 가족은 내가 구원받기를 원해서, 서로의 의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누구 하나는 죽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쪽의 신앙이 깊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삶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까워질수록 또한 멀어진다.
그럼 누구 하나가 고집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를 먼저 버리는 자가 대단한 사람이다. 갑자기 교회에 열심히 다니게 된다거나 그냥 그 사람이 살아가는 대로 살기를 진심으로 허용하거나.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진심으로 내려놓았다는 걸 의미한다. 목숨처럼 여기고 있던 걸 버린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아가도록 가족은 나를 진심으로 허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러고 있지.)
자. 가족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온전히 나로 살아가도록 인정해 주고 마음속으로 응원해 줘서 늘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늘 평행선일지라도 우린 늘 진심으로 만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