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한 끼의 기억

by Grace k

언젠가 방송에서 본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제주도에서는 물회에 된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고 했다.
물질하던 해녀들은
수박을 된장에 찍어 먹었던 것 같다.
단 맛과 짠 맛의 대비되는 조화가
어렴풋이 가늠되었다.
다소 생소하고 특이하지만,
대한민국 토종인의 입맛이라면
된장이 안 어울릴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맛 좋은 내 친구 K는
더 솜씨 좋은 언니를 두었다.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시는 언니가
철철이 볶은 깨, 말린 고춧가루 그리고
담근 된장을 보내 주신다.

정 많은 친구는 항상 몫까지

챙기기를 잊지 않는다.
친구가 나눠주는 토종 양념은
친정 엄마의 그것처럼 귀하다.
공원에서 가끔 바베큐를 때면
삼겹살은 내가 챙긴다.
쌈장 된장 김치등이 친구의 담당이 되는 건,
깊고 그윽한 맛을 만끽하고픈 내 욕심때문이다.


제주도 음식을 먼저 언급한 이유가 있다.
어제와 오늘,
음식에 무심코 얹어본 그 토종 된장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의 조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금손 친구가 열무 김치를 나누어 주었다.
알싸하게 맛이 든 국물김치 한 통은
무더위를 식히는 별미다.
열무 국수로 먹다가,
열무 비빔밥을 먹으며 그 된장을
고추장 대신으로 얹어서 먹었다.

햐, 첫 술에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오래 전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또래 사촌 둘과 내 남동생 이렇게 넷이서

몇 차례 외할머니댁을 놀러갔었다.

각 역 마다 정차하는 완행열차

젊은 세대는 들어 본 적도 없을 비둘기호를

타고 가는 느린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해 여섯 시간쯤을 지나
할머니 집엘 도착했다.
비포장 도로, 닭장, 오일장등의 풍경이

신기하고 낯설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첫 시골여행의 백미는
널찍한 마당 평상에서
큰 양푼이에 함께 비벼 먹던 비빔밥이었다.
계란 프라이 하나 없이 푸성귀와 된장
그리고 심심하게 삭은 열무김치를 넣어 비빈 밥.
지금 비벼 먹는 밥에서 그 맛이 났다.
친구와 나는 밴쿠버로 이민 와서
오랜 세월 함께 했다.
인연이란 이런 건가 싶은 건,
외할머니 댁이 있던 시골과
내 친구의 본가도 같은 곳이라는 점이다.
그 공기, 바람, 흙냄새가 만들어낸
토양이어서 같은 맛을 내는 걸까.
오래 함께한 인연이 닮아가는 식성을
만든 것일까.
‘열무에 된장’
이 소박한 재료가 버무려진 비빔밥
한 그릇은, 유년의 기억까지 소환된
행복한 한 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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