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추억

by Grace k

나는 늘 환자를 담당했다.
누워 있으면 되는 일이라 쉬어가는 놀이이다.
아들은 책임을 다한다.
환자 1인만 받는 의사역할이다
침대 위에 시트를 정성껏 깔고
그 위에 나를 누이면 진료 시작이다.
나는 아픈 곳을 읊어댄다.
아들은 꼼꼼한 치료를 해준다.
딸이 내 뱃속에 있을 때이니
더 신중히 케어해 준다.
"발이 부어서요,
네, 발 맛사지도 해드릴게요
어깨도 좀 아프고요
아, 기다려보세요 치료할게요"
한 시간가량 비지땀을 흘린
처치는 1시간가량 펼쳐진다.
마음 다한 인술을 펼치는 꼬마의사는
맞춤형 환자와 더불어 매일의
루틴을 그렇게 보냈다.
킨더가든을 들어가기 전,
데이케어를 보내기는 애매한 타이밍이었다.
함께 책을 읽고 만화 영화를 같이 보는
일상이었다.
퍼즐과 병원놀이까지 하다 보면
하루는 빼곡하게 채워진다.
"엄마, 몇 시예요?"
"네 시 다 되어가는데"
그러면 티브이 앞에 앉는다.
Dvd로 피터팬과 토이스토리를
매일 번갈아 가며 봤다.
취학 전 영어를 전혀 몰랐지만
아이의 습득 속도는 놀라웠다.
후에 입학을 하고
첫날을 보낸 후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
"**는 esl이 필요 없겠어요"

그렇게 킨더부터 초, 중, 고, 대학까지
스스로 자기 일을 해 나가며 아들은 성장했다.
주변을 챙기기 좋아하고
뭐든 독립적으로 헤쳐가는 취미도 부자인 아들,
며칠 남지 않은 딸 생일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아들은 올해 초 스물여덟 나이로 분가를 했다.
아들이 쓰던 방은 임시 빨래 건조방이 되었다.
식구가 단출한데 여름 옷가지들이다 보니
세탁도 잦지 않다.
빈 아들 방에 건조대를 두고
빨래를 널어 본다.
내 집은 본가인 셈이다.
방문시, 건조대만
걷으면 아들의 침실은 보존 상태다.

사진 1,2


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웃고,

집 안 맥가이버 노릇은 도맡아 하던 아들이다.


"곧 만나서 왁자지껄 수다와 맛난

음식 보따리 풀어내자,

언제든 환영이야,

이 곳은 분가한 너의 본가이니까."

사진3,


1,경상남도 어느 시골 마을의 석류가 익는 풍경

2 영주의 무섬마을

3 아들 딸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의

캐릭터가 가득한 일본 유후인의 마을


지나온 시간의 소중했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는 몇몇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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