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파는 사람, 진정성을 사는 시대
‘모든 것이 세일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불편했다.
내가 무언가를 팔고 있다는 인식 없이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말을 걸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부딪히면서 이 말은 점점 진실처럼 느껴졌다.
가장 가까운 예로, 나는 종종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세일즈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뜻 보면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존재하는 관계처럼 여기지만, 그 안에서도 자식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식은 필요한 요청을 할 때 더 쉽게 신뢰를 얻는다. 공부, 친구 관계, 습관, 표현력—all of them are part of the pitch.
그리고 이 모든 관계의 바탕에는 ‘신뢰’가 깔려 있다.
세일즈는 결국 신뢰이고, 그 신뢰는 결국 진정성에서 나온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말하는 사람이 그 일을 정말 믿고 있다는 느낌.
사람들은 그걸 다 느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동받는 순간은 결국 ‘이 사람, 진심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다.
그때 비로소, 상대는 ‘관객’이 아닌 ‘참여자’가 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런 관계는 오래간다. 지속 가능하다.
하지만 진정성과 신뢰는 대단한 이벤트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일관성 있는 태도, 말과 행동의 작은 결이 끊임없이 축적될 때 비로소 생겨난다.
그리고 그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이면, 사람들은 더 이상 ‘납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 사람이니까.”
이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세일즈의 완성이라고 믿는다.
요즘 세상은 뭐든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성과도, 사랑도, 성공도.
하지만 신뢰만큼은 예외다.
단거리 질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유일한 감정이다.
이건 요령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렵고 오래 걸리는 길.
그러나 결국은 그 길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신뢰’를 목격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정성과는 다른 방향의, 그러나 오히려 더 끈끈하고 오래된 신뢰.
경제 관료, 정치인, 그리고 기득권 그룹.
그들은 서로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 통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거래를 끝낸다.
말 그대로 그들끼리의 ‘신뢰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가까운 현실 속에서 본 적이 있다.
무언가를 바로잡고 싶어도 힘이 닿지 않는 경험.
‘책에서 배운 대로라면, 정의가 이겨야 하는데 왜 안되지?’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신뢰’를 갖고 있었고,
그것은 단기간의 정의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두꺼운 장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우리가 말하는 진짜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우리는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브랜드, 우리가 설계하는 관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비록 지금은 더디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진정성은 더 깊고 단단한 신뢰를 남기게 된다.
‘신뢰’는 결국, 느리게 쌓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자산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대화하고, 또 무언가를 함께하려 할 때
‘세일즈’를 하되 ‘진정성’을 담고자 한다.
그 진심이 결국은, 언젠가는 통한다고 믿는다.
세일즈는 결국 신뢰다.
나는 이 말을 요즘 자주 곱씹는다.
우리가 사람들과 주고받는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