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 리부트 | 50대, 나만의 퍼스널 브랜딩 시작하기

나를 콘텐츠로 만드는 첫걸음

by 엘리준 Ellie Jun

01.

때는 바야흐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력서를 움켜쥐고 세상에 부딪치던 1990년대였다.


'자기 PR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는 시절이었지만, 나는 늘 '겸손해야 한다'는 위선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다. PR이란 단어는 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고, 내게는 너무나 낯설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를 화려한 포장지로 감싸는 일처럼 느껴졌다. 학습지, 학원, 건설회사, 방송국까지 이곳저곳을 떠돌며,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20대를 흘려보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겨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지던 시간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고민하며, 밤마다 자녀 양육서적을 읽고, 실천하고, 터득하면서 기록했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시작한 <육아일기>,

아이가 해 준 귀여운 말들과 작은 에피소드들을 빼곡히 적어놓은 <내 아이의 톡톡톡>.

웃고, 울며 나는 그렇게 일상을 써 내려갔다.


스프링 노트가 하나둘 쌓였고,

다음 카페에서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 타며 기록을 이어갔다. 다시 바인더를 꺼내 손글씨로 적기도 하며, 여러 플랫폼을 떠돌면서도 기록하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읽고, 쓰고, 또 적어가며,

그렇게 치열하게 나는 아이들을 키웠나 보다.

나의 일기장 : 결혼하고 난 후 꾸준히 기록한 스트링 노트 & 바인더


02.

빈 둥지 증후군이 오기 전이다.

어느덧 두 자녀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고,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자신들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헛헛한 마음이 엄습하기 전, 나도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겠다 싶어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가 보려 했는데, 살아온 90년대의 일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전문성, 가치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직접 발신하며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날고 기는 20~30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 같은 사람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예전보다 두뇌회전도 느려졌고,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는 속도도 한결 더디기만 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경력단절로 지낸 시간이 어느덧 26년.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간간이 '데이트와 결혼학교'라는 이름으로 청소년과 청년들들에게 강의를 해 왔지만, 그것은 돈을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경력'이라 부르기엔 다소 애매한, 그저 '경력을 위한 경험치의 시간들'이었을 뿐이었다.


망망한 대해 위, 작은 배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03.

그래도, 배는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띄운 배라면, 노를 저어봐야 했다.

더 철저히 준비하고, 더 알아보고 시작해야 한다며 주저하기보다, 이제는 거침없이 시작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혼 전부터 우리 부부의 단골 대화 주제는

늘 '교육'과 '가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현장을 만들 수 있을까,
더 좋은 교육 콘텐츠는 무엇일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고, 질문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을 우리 가정에서부터 실현해 보려 작은 노력들을 기울여 왔다. 오은영 박사처럼 자녀양육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온라인 석사과정을 통해 교육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준비를 해왔다.



아이들을 키우며 버거워하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아이 한 명당 박사 학위 하나예요.
두 명을 키우니 박사 학위 두 개나 하고 있는 거예요.
힘든 게 당연하죠.

솥뚜껑 운전을 하며, 틈틈이 배우고, 읽고,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박사 학위의 졸업은 있는 걸까 싶다. 시즌마다 연구 과제가 달라지니 말이다.


또한 가정이 깨어지는 일이 흔해진 이 시대에,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것에 대한 염원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했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 시즌마다 멘토들이 붙어 삶으로 가르쳐주고, 함께 걸어주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이제는 나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결국 자기 이해와 자기 분석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배를 무작정 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북쪽인지, 남쪽인지는 알아야, 그쪽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돛을 단 기분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라도 열심히 저어 나아가면 된다.


사진: Unsplash의 Maïa Leleu


04.

내가 걸어왔던 길을 셈하니,

비로소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를 팔아야 한다'는 감이 왔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자기 PR의 선물포장을,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이름으로 내가 가지고 있었던 SNS계정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입히기 시작했다.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링크트리, 카카오채널, 그리고 유튜브까지.


모든 계정을 '엘리온에어(ellie on air)'로 통일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ChatGPT와 친구가 되어 각 플랫폼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고, 어떤 콘텐츠를 올려야 할지도 하나씩 공부해 나갔다.


그 와중에 줄기차게 써 온 글 덕분인지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합격했다. 모든 계정을 연동해 두었더니 네이버 블로그의 방문자가 꽤 늘었다. 다른 계정에는 아직 별 변화가 없지만, 이 정도면 만족이고, 선방이다.


하지만 곧 난제에 부딪쳤다.


작가가 됐다는 기쁨도 잠시, '구독과 좋아요의 압박에서 자유하다, 난 쿨하다' 생각했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원래 모든 앱의 알림을 꺼 두고 살았는데, 이 작가의 길 위에서는 이상하게 과욕이 생겼다. 알림을 다시 켜고, 그 숫자 하나하나에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트렌드가 뭐지?

잘 나가는 작가들의 검색어를 기웃거리며, 내 것과 비교하고, 좌절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웃의 글에도 기웃거리며 구독자 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건 '비교 강박에 빠져 성과에 집착하게 된 과욕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스스로 내렸다.

그리고 처방은 단순했다.

모든 플랫폼의 알림을 다시 OFF모드로 돌려놓는 것.



나의 최근 플랫폼들 : 브런치 스토리, 링크트리, 네이버 블로그

05.

작은 분량이라도

아주 천천히,

꾸준히!

이제는 나만의 속도로 가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잊고 만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욕을 부리다 글의 방향성이 흔들리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잘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작은 분량이라도 아주 천천히, 꾸준히'

라는 글쓰기 모토를 가지기로 했다.


내가 왜 쓰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씩 다다 가기 위해,

일정 수준의 필력과 나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내 속도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즐겁게,

꾸준히 쓰는 글쓰기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만의 색깔,

퍼스널 블랜딩을 쌓아가는 여정에서

과욕은 내려놓기로 했다.


느리게,

굼뜨게 흘러가는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 주기로 했다.


이만하면,

인생 2막의 프롤로그에

괜찮은 스토리 하나는 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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