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지금 배움의 길 위에 다시 서 있다. 영어를 배우고, 글을 쓰고, 교육 콘텐츠를 제작한다면서 각종 책을 읽고 수집하고 또 내년엔 박사과정을 해 볼 참이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나를 달달 볶고 있는지, 지금의 나의 이 배움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원래 나는 공부에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시험, 성적표, 경쟁, 눈치…
지긋지긋한 비교 논리에서 자유하고 싶었던 지라, 공부는 안 할 줄 알았다.
이런 내게 끊임없이 롤모델이 되어 그 뒷모습을 보며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가 하며 도전을 준 사람이 있다.
나의 배움, 나의 끈기, 나의 태도에는
늘 ‘군인 아빠’가 있었다.
02.
강원도의 밤하늘이 그리워진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박혀 쏟아지고,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자극하던 그 시골길, 비 오는 날엔 개구리들이 시끌벅적 소란을 떨던 최전방. 낮이면 관사 작업이나 도로 보수공사를 하러 왔던 사병들을 여전히 ‘군인 아저씨’로 부르게 되는 그렇게 나는 군인의 딸이 되었다. 내 인생의 절반을 군과 함께 살았다. 군인의 딸로 태어나 대령의 딸이 되기까지.
나의 아빠, 그는 나의 영웅이자, 나의 롤 모델이다. 군인이란 타이틀이 맞춤처럼 잘 떨어지는 아빠는 다시 태어나도 군인을 택하겠다 하신다. 군인이 천직이다. 33년간의 군 생활에서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각을 잡고 호령하셨던 아버지, 집 한편에 꽂힌 여러 지휘봉만큼 아버지의 리더십은 빛을 발한다.
03.
리더십 중 으뜸을 꼽으라면 ‘사병 사랑’을 들고 싶다. 사병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내 선명한 기억 속에 아빠는 보초 서는 사병들은 물론 길에 마주치는 사병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늘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며 어깨를 토닥이신다. 자기 이름 석 자에 충성을 연발하고 감격해하던 군인 아저씨(?)들. 여전히 연락하는 사병들이 있으니 눈물 많고 정 많은 아빠에게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빠의 얼굴은 늘 그을려 있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까만 것인지 고된 훈련으로 까매진 것이지 어린 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어난 별명일까? 아빠의 별명은 ‘흑곰’이다. 이 별명에도 탄생 비화가 있으니, OO 사단 4대대를 맡으셨던 아빠는 ‘흑곰 4대대’라는 이름을 만드셨다. 대대 정문에 대문짝만 하게 그려진 흑곰을 볼 때마다 내게는 딱 아빠가 보였다. 이렇게 대대 이름 만드는 것은 유행이 되었고 다른 대대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04.
카키색 군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 그중에 최고는 아빠다. 새벽같이 일어나 군화 끈을 질끈 매시던 뒷모습은 왠지 울컥거리게 되는 묘한 감동이 있다. 손가락이 까맣게 되도록 군화를 닦아대던 삼 남매는 커다란 군화를 신고는 ‘아빠 코스프레’를 즐겼었다. 카키색에는 아빠가 있다. 익숙한 냄새가 있다. 아빠 향기다.
향기 하니 생각나는 또 다른 냄새, 아빠의 발냄새. 긴 행군에서 돌아오시는 날의 매캐한 양말 속,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발가락 사이에 무좀들이 잔뜩 성이 나고야 마는 날이다. 바늘에 실 꿰어 물집을 터뜨리는 진기명기에 삼 남매들이 옹기종기 구경이다. 또 훈련이라도 있는 날은 고개가 꺾일 듯한 무거운 철모를 써보려고 난리가 난다. 무엇보다 우리 삼 남매에게 추억되는 것은 아마도 건빵일 것이다. 건빵 사이 별사탕처럼 추억은 달달하다.
05.
가끔 기분 좋게 취하던 날, 아빠의 손에 들려있던 군만두와 투게더에 우리는 취했었다. 또 어떤 날은 나란히 서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 수십 번 반복했었다. ‘진짜 사나이’의 군가를 부르며 목이 터져라 복창도 했다. 그렇게 ‘충성! 충성!’ 반복되던 훈련에 두 남동생들은 다 ROTC(학생장교)가 되었나 보다.
교육에 열의가 많으셨던 아빠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구구단을 가르쳐 주시고, 조선 왕조들의 이름에서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자 하셨던 배움의 열의가 대단한 분이셨다. 가난한 형편에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아빠였기에 자식들에게만은 더 가르치고자 했던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었다. 자녀를 키우다 보니 더욱 이해가 되는 아빠의 마음이다. 이런 교육 열의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피할 수 없는 군자녀였기에 아빠는 늘 미안해하셨다. 초등학교 여섯 번, 중학교 두 번, 고등학교 2번. 정확히 손꼽아 세는 나의 전학 횟수다. 아빠의 우려와는 달리 나는 사교성이 많은 아이가 되었고, 어디서나 적응을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새로운 곳은 언제나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국제적으로 떠돈다. 호주로, 미국으로.
06.
예비역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전역하던 날의 아빠의 마음이 밟힌다. 그날을 생각만 해도 먹먹해진다. 큰일이 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빠는 멋지게 제2의 인생으로 도약하셨다. 장교 시절보다 더 현재를 즐기며 안보교수로서 예비군, 민방위대, 공무원, 노인대학 등 여러 곳에서 나라사랑을 가르치셨다. 부르는 곳은 어디든 번쩍이는 색소폰과 함께 달려가셨다.
독학으로 배운 색소폰은 날개를 달았다. 지하철 공연으로, 양로원 위로공연으로, TBC 색소폰 대회에서 금상까지 타는 영예도 안으셨다. 특히 매주 화요일마다 섬기는 지하철 공연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지속해오고 있다. 가끔 이 공연에 참석해 좋은 기운을 받는다. 엄마는 매번 커피와 요구르트를 나눠 주신다. 이에 질세라 참석하시는 분들도 박카스를 놓고 가신다. 꼬깃꼬깃한 돈 몇 푼 쥐어주시며 고맙다 하신다. 춤을 춰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교복 입은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아빠가 판을 벌였더니 판이 커지고, 판이 즐거워진다. 더불어 하나가 된다.
07.
이런 섬김을 어떻게 알았는지 국방 TV <백년 전우>에서 아빠의 취재가 있었다. 때마침 친정을 들렸던 나도 잠시 등장하는 행운을 얻었다. 아빠의 인생이 온전히 드러나는 컷들이 모여 아빠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귀한 앨범이자 유산이 되었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열정이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매일 일기를 쓰시는 아빠, 가훈인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라’ 던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 철저한 반성과 계획은 나의 일기장에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땀에 흥건히 젖도록 훈련하던 군복 입은 아빠는 여전히 걸어내야 하는 하루의 구보를 채워가고 계신다. 그 꾸준함과 강인함이 아빠다. 그 강한 의지가 아빠가 말하는 ‘군인정신’이다. 아빠의 나라사랑은 안보교육이 되었고, 재능 나눔이 되었다. 육군 대령 군인이신 아빠가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
08.
아빠의 군인 정신은 나에게 ‘계획과 훈련’의 중요함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여전히 일기를 쓰며 나를 다잡고, 무엇이든 배우기로 한 결정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 근성, 그 자세는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강한 유산이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되었고, 다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의 리더십과 배움에 대한 사랑은 지금 나의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09.
말보다 큰 아빠의 전 생애를 통해 딸은 배운다. 다시 태어나도 군인이 되겠다고 하셨듯이 나 또한 다시 아빠의 딸로 태어날 것이다. 겪었던 그 모든 일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빠!"
부르기만 해도 좋은 그 이름.
아빠에게서 배운 배움의 자세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짓는 가장 큰 기준이 되었다. 다시 배움을 시작하며, 나는 오늘도 ‘아빠의 딸답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