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우리 공부방에 다니는 소연이는 K-장녀다.
5학년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제법 어른스럽다.
보통은 5학년쯤 되면 조금씩 어른을 흉내 내려는 모습들이 보이긴 하지만 소연이는 그와는 결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어, 엄마를 대신할 때가 많은 모양이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첫째 소연이에게 많은 임무를 지어주곤 했다.
그래서 소연이는 자신의 학업과 스케줄은 늘 뒷전이고, 동생 유치원 픽업과 막내의 기저귀 가는 일 등 부모님의 일손을 돕느라 바빴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소연이는 수줍게 우리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달처럼 생긋 웃는 눈 속에는 작지만 강하게 빛나는 눈빛이 있었다.
말투는 주저하면서도 자신을 또렷하게 표현했으며, 예의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소연이는 5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다.
곱셈을 할 때면 잔뜩 긴장해 멋쩍게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난처하고 민망한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도 그저 웃는 얼굴로 그 상황들을 모면했을 터였다.
여기서 분명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면 당연히 따라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한창 곱셈을 배우기 시작할 2-3학년 때 시기를 놓치고 4학년에 들어서면,
곱셈을 못 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 한다.
그땐 이미 친구들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그만큼 자신감도 떨어져 더 움츠러드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함께 할수록 소연이는 배움의 의지가 강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이는 국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영어 학원도 다니고 싶지만, 동생의 픽업 시간과 동선을 맞춰야 했기에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소연이에게는 특별 솔루션이 필요해 보였다.
3학년 과정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갔다.
그리고 나는 소연이를 채근하는 일이 없었다.
곱셈의 원리를 알려주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익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소연이의 노력은 서서히 결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습장을 빽빽이 채운 연필 자국이 아이의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수업 시간 동안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집중했고, 숙제도 잊은 적이 없었다.
틀린 문제가 많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집념도 보여주었다.
아직도 소연이는 수학에 서툴다.
하지만 이제는 수학이 좋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선생님, 수학이 좋아졌어요!"
말끝에 담긴 자신감과 작은 기쁨이 아이의 얼굴에 잔잔히 스며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따라서 반달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