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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안녕

09

by 여름

나만의 첫 제자 민우는 벌써 5학년이다.

어서 와, 공부방은 처음이지?
02. 나만의 첫 제자


우리가 함께한 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민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했다.

처음의 동글동글 귀엽던 외모는 무서운 성장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키도 제법 컸으니 덩치가 6학년 형보다도 클법했다.


그런 민우는 패션 센스도 독특했다.

원색의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고, 형광색 양말은 기본 옵션이었다.

물론 엄마의 취향이 대거 반영되었겠지만, 민우 자신도 이런 패션에 매우 만족하는 눈치였다.


동그랗고 커다란 형광색 민우는 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민우 3학년 때. 민우를 찾아보세요!


조용한 수업 시간 민우는 '쾅!'하고 세차게 중문을 열어젖히며


"선생님, 선생님~~"


항상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제법 큰 덩치 때문인지 아이들이 점점 위축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여전히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민우는 점점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음속에 있는 말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뱉곤 해서 친구들에게 오해를 사기 일쑤였고,

종종 사소한 말다툼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하고, 모두에게 학업에 집중하기를 종용했다.

그럼 어김없이,


"히잉, 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선생님은 이제 내가 싫은가 봐. 히잉.

이 공부방은 안 되겠다, 이제 끊어야겠다. 선생님이 나만 미워하니까."


아직은 어릴 때 말투 그대로인 민우는 이 말을 끝없이 반복하곤 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친구들과 공감대도 만들어 주고, 친구들 앞에서 칭찬도 해주며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노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이 맞지 않는 친구들은 민우가 오는 시간을 피하려 하고, 급기야는 그만두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어머니, 민우가 공부방 수업에서 친구들과 트러블도 잦고 힘들어해서요.

민우에게 더 편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수영이며, 미술이며 민우의 스케줄이 바빠 시간표 조율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 노력이 닿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의 부족함을 탓하며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어쩌면 민우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과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늘 부딪혔을 것이다.

아직은 감정이 앞서고,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나의 욕심만으로 민우를 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어머니와의 통화는 쉽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나의 이야기에 애써 담담하게 대하는 어머니가 아려왔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긴 대화 끝에 결국 민우는 공부방을 쉬기로 했다.


"민우가 선생님과 헤어지는 거 알면 너무 슬퍼할 거예요. 마지막까지 내색하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 수업날 민우도 무언가를 느꼈던 걸까.

그날따라 민우는 수업 후 책상 줄도 맞추고 자리도 정리하며 내 곁을 맴돌았다.

나는 그런 민우에게 염화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고작 간식을 한 움큼 쥐어주며 다음 시간에 또 보자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민우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슬픈 안녕을 해야만 했다.


민우의 빈자리는 오래도록 눈에 밟혔다.

조용한 수업 시간은 왠지 생기를 잃은 듯했고, 선생님을 두 번씩 부르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언제든 민우가 선생님을 부르며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았다.

한동안은 민우도 이곳을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저려왔다.


아이는 그렇게 내 품에서 떠났지만,

내 마음속 민우는 여전히 형광빛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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