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림도 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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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테




의심할 필요 없이 나의 파트너는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다. 연상인 나를 일곱 살짜리 아기 취급하는 것을 미안해하면서도 그것을 멈출 생각을 않는다. 짐작건대 그 자신도 그것을 그만둘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혹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거나.


'내가 당신을 낳았어야 하는데.' 그는 전화기 너머로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종종 중얼거린다. '다음 생에는 꼭 내가 당신을 낳아 자식으로 기를 거야. 우리 아기, 마음껏 사랑해 주고 또 교육시켜 줄 거야.' 나의 하루는 그의 '아가, 귀염둥이, 예뻐 죽겠어, 내 작고 소중한 아기 강아지',라는 맹목적이고 달콤한 부름이 얼굴 위로 쏟아지며 시작된다. 나는 이미 스무 살 중반에 다다랐지만, 그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핀 것에 대해서도 스무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찬사문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 나는 머리통이 겨우 무릎에 닿는 작고 여리며 ‘미미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것은 보자기에 싸인 채로 바구니에 담겨 나일강물을 타고 흘러 마침내 그에게로 왔다.


그는 내가 음식을 먹다가 눈을 찌푸리면 자신에게 뱉으라며 거리낌 없이 손바닥을 내밀고, 내가 칫솔질을 ‘치카포카’라고 하지 않으면 의문스러워한다. 그는 내게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롤리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하고, 비바람이 불면 나의 몸이 메리 포핀스처럼 저 멀리로 날아가버릴까 걱정한다. 내 몸에 난 생채기는 그에게 있어 몸이 두 동강 나는 중상이다. 그는 나를 놀이터의 그네 위에 앉혀 그것을 뒤에서 밀어주며 평생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욕망이 나의 앞길을 막을까 염려한다.


그의 들끓는 마음에 비해 사랑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한 없이 순종적이다. 내가 그에게 꽃말을 '맹목적'으로 다시 지어야 할 듯한 기세로 꽃다발과 편지를 건네며 마음을 고백했을 때, 그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와 다시 재회하기까지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확신했다. 연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기만 해서 곧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그것은 내게 불미스러운 사고가 닥쳤을 때마다 현실이 된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종종 스트레스로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연질색 한다.


나는 어떠냐고?


성인이 되었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버릇 나빠지는’ 방향으로 길들이려고 할 때 늠름하게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할 텐데, 나의 자아는 팔팔 끓는 애정에 힘 없이 녹아 그가 마련한 하트 모양 초콜릿 틀 속에서 굳어 버렸다. 유아 퇴행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뒤 나의 머리는 바닥에 납작 조아리다 못해 스스로가 두 발로 서야 하는 인간임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어라, 나는 본디 그의 무릎 위에 거주하는 네 발 짐승일 텐데 왜 인간의 말을 구사하며 돈 벌 궁리나 하고 있지? 어서 나를 안아줘!)


이따금 그의 특이한 peculiar 태도에 대해 아동 심리학적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가설이 그곳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꼭 검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달콤한 열매가 떨어지는 나무가 있는데, 굳이 기원을 탐구하겠답시고 나무의 밑동을 자를 필요가 있겠는가?


천만에.


내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최근에야 그와의 첫 만남이, 한 달 남짓에 불과한 그 시간이 내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이고도 깊었는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인에 대해,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내가 저질러 온 모든 실수들에 대해 쓰고 싶다며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 나를 시도 때도 없이 가로막은 것은 당신의 존재가 아니라 나 자신의 닫힌 내면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내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는 이미 "지나치게 많이 말했다"라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러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모순된 양가감정에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나는 나의 성애 경험에 대해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고. 이루고자 했으나 실패한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걸 원하고 있다고.


성애에 대한 나의 모순된 감정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추적해야만 언어화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것을 언어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억들과 신경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민감하고 여린 치부를 들춰내고, 시기를 불문하고 우리는 언제나 순진하고 어리다는 외피를 벗어던진 나체와 마주해야 했다.


내가 머지않아 자백하게 될 진실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내가 줄곧 사랑이라는 무대 위에서 전력으로, 또 전략적으로 발을 헛디뎌 왔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절대로 무지하거나 순진하지 않았다. 성에 관해서라면 나는 언제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자였다.


‘휘청거림도 춤이에요.’ 영화 해피투게더(원제는 '춘광사설'이다.)의 정열적인 탱고를 함께 보고 난 뒤에 그는 이 말을 곧잘 입에 올리곤 했다. 물론 말을 꺼낼 때마다 약간의 변주는 있었다. ‘비틀거리는 것도 춤이에요. 휘청거리는 것도 춤이에요. 발을 헛디디는 것도 춤이에요.’


그렇다. 미숙함에서 기인한 휘청거림도, 열망과 오해로 엉켜버린 스탭도, 서로의 눈을 감기는 지리멸렬함도 춤이다. 상대방이 손을 뻗게 되면 뒤엉키게 되는 것은 결국 두 개의 몸이니까.


삶을 연출하는 나의 거듭된 실패가 춤이 될 수만 있다면 스탭 즈음이야 몇 번이고 엉키고 꼬여도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인간은 바로 그런 이유로 펜을 들지 않았던가? 자신의 실패가 독무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춤을 추는 영혼의 단짝이 없다면 최소한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관객이 있었기를 내심 바라면서 말이다.


한편 이런 시도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을 하고 싶어서, 혹은 삶에 대한 일관성을 추구하려는 헛된 욕망 때문에 우연성이 촉발한 아름다움을 와해시키는 것이 아닐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언젠가 글 쓰는 것을 마친다고 해도 커튼콜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호의적으로 미소 지으며 서로를 얼싸 안는 순간 따위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 중요한 건 … 우리가 함께 춤추고 있다는 사실이지. 내가 운 나쁘게 넘어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삶은 영영 끝나지 않을 기세로 흘러가고 염원하는 커튼콜은 시작되지 않는다.




때는 6월 중반, 내가 잠시 한국에 귀국해 있을 때였다. 우리는 오전 늦게 느지막이 일어나 한 쌍의 고양이처럼 침대 위에서 뒹굴다가 커피를 마시러 사이좋게 밖으로 나왔다. 시험을 앞둔 우리는 오후에 다시 만나 늦저녁까지 공부를 할 예정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가 동날 때 즈음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과 당신을 만나기 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글을 쓸까 해요.”


그는 스콘 위에 산딸기처럼 신 맛이 나는 잼을 바르다가 특유의 큰 눈을 동그랗게 들어 올렸다.


“아, 이유는 두 가지 있어요.” 나는 그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합당한 이유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겨 변명처럼 덧붙였다. “첫 번째는, 제 기억들이 너무 빠르게 와해 되는 바람에 불안해졌거든요. 5년 전 당신이 어땠는지 기록해 두고 싶어요. 두 번째는, 그 사이 벌어진 것들이 아주 이상하고 독특한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한번 적어보고 싶어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가진 것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하게 들려 목이 막혔다. 독특하다는 말은 지나치게 세련된 표현이었지만 구태여 특별하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예상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그런데 왜 나한테 알려 줬어요?”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당신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 걸.”


“저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제가 질투할 만한 내용이 있나요? 저는 질투가 심하거든요.”


“글쎄요.” 나는 망설이다가 그것이 틀린 대답이라는 사실을 짐작 하면서도 대답했다.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읽힐 수 있게 할 거예요.


“이해할 수야 있겠죠.” 그는 맑게 웃었다. “좋아요. 꼭 읽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럴 만한 대목이 나오면 그 부분은 읽지 않을게요.”


카페의 창으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내린다. 대화의 주제는 내가 쓰고 있었던 소설로 옮겨간다. 그가 내가 건넨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형편없는 글솜씨를 들키고 말았다는 불안증세가 재발해 제자리에 앉지 못하고 그의 주위를 짐승처럼 서성였다. 결국 초조함과 불안이 극에 달한 내가 그의 손에서 화면을 빼앗아가며 시작된 실랑이는 그가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자리에 일어나면서 끝이 났다.


“자기, 제가 없는 동안 한 시간 뒤부터 판매 시작하는 체리 파이를 사 주시겠어요? 다른 사정이 생겼다면 굳이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가 싱그러운 미소를 던지며 카페 밖으로 나서자, 나는 두 가지 숙제와 함께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12시 반에 새로 구워질 체리 파이를 사는 것. 그리고 …


과거의 나는 적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진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섹슈얼리티라면 어떡하지?’ 그것은 물어뜯겨 엉망이 된 손톱처럼 볼품없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그런 것을 쓸 바에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낫겠다.’ 그러나 지금은 수치심보다 기억의 가멸성이 주는 두려움 쪽이 더 견디기가 어렵다.


결국 체리 파이를 살 수 없었다. 인기 메뉴인지라 테이크 아웃은 할 수 없다고 가게 주인이 퇴짜를 놓은 것이다.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쓰는 것이었다. 나는 괴로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지금의 우리를 기억할 수 있는 건 우리 둘밖에 없어.’ 나는 스스로를 설득시키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너를 기억해 주는 건 너 자신 뿐이야.’




하루는 친한 선배의 집에서 타로 카드를 봐주면서 서로의 성적 욕망과 취향-언제 누구와 함께 나누어도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한 대화 주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핏대 높여 ‘섹시한 성적 교류란 무엇이고 또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변을 토하자, 선배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내가 볼 때 너는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 농담 같은 말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만 살고 싶어 했다. 나는 당장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비석 위에 어떤 문구를 남기고 죽어야 할지를 더욱 치명적인 문제로 여기는 인간이었다. 경험들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아무리 다시 써 보아도 마땅한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관계들은 가차 없이 파기해 왔다.


작품을 만드는 것. 비비언 고닉이 '수정주의적 역사관의 짜릿함'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 5년 동안 내가 반복해 온 섹슈얼리티적 시도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나는 통속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스스로 연출한 줄거리를 연기했다. 모든 것이 나의 마음대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서사적인 파괴력만 있다면 돌발적인 무질서와 혼란은 용인할 수 있었다.


삶은 은유였다. 삶은 이야기였다. 최소한 전체가 될 수 없더라도, 삶의 어떤 부분은 나의 몸을 기꺼이 던지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관능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섹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사랑이라고 다를까? '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몇 번이나 이 관계를 아름답게 직조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깨달은 뒤에 맞이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실상 동갑내기에,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여전히 학생 신분이다. ‘사실상’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선천적인 지병으로 인해 그의 출생 연도가 출생 신고를 한 년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연인이 되었을 때 나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학부생이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장거리 연애를 함께 견디게 되었다. 그와 사귀게 된 지 이제 이 년 가까이가 되어간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두 명 다 고등학생일 때였다. 첫눈에 반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신경증적인 악재가 겹쳐 한 달 동안 중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심리적 내상을 입은 뒤 헤어졌다. 다시 그를 만났을 때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시간의 경과는 결코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눈을 한번 깜빡였더니 우리는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남에게 상처와 불안을 주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며, 자아도 제법 멋들어지게 성숙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분당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나 5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전신이 새카만 옷을 입고 그림자처럼 앉아있는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더욱 아름다워진 것에 대해 내가 하릴없이 감탄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우리는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풍부한 제스처와 뉘앙스가 섞인 대화를 나누었고, 더 자주 웃음을 터뜨렸으며, 결국 삼일 내내 붙어지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완고한 확신을 품고 그에게 고백했다. 그 결심이 지나치게 확고했던 나머지 당시 내가 벌인 일들이 무심하고 냉혹한 계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재회하여 연인이 되었다. 내가 그를 작은 토끼라고 부르며 어여삐 여기는 동안, 5년 전의 기억은 말 그대로 토끼뜀을 뛰며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났다.


과거의 기억들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대화의 화두에 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나 교류한 시간은 한 달 남짓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나의 정체성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력을 실감할 때면 나는 몇 번이고 아득해진다.


그때의 그가, 지금의 연인이자 가학적인 취향(세간에서는 이상성욕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가진 성향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저질렀던 모든 터무니없는 일들은 과연 없던 일처럼 되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아가 미처 성숙하지 못한 어설픈 크리스천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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