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당직실에서
의사가 되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과의사의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삶의 끝자락 가까이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진료과는 대부분 내과다.
삶과 죽음이 맞닿은 그 조용한 경계에서, 나는 매일 서 있었다.
처음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던 그 순간들을,
나는 지금도 조심스럽게 떠올린다.
이 책은, 내과 전공의 1년 차였던 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한 고민들,
그리고 서툰 첫걸음 속에서 비로소 배워나갔던 것들을 기록한 글이다.
매일 헷갈렸고, 자주 틀렸다.
몰랐고, 늦었다.
서툰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허둥댔고,
떨리는 마음으로 약을 처방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죽음이 스쳐가는 병동과 중환자실.
새벽의 고요한 당직실.
왁자지껄한 의국실.
그 안에서 나는 웃고, 흔들리고, 때로는 조용히 무너졌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환자 곁에 오래 서 있었다.
무언가를 놓친 것만 같은 기분에 마음이 저릿했고,
내가 했던 선택들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되묻게 됐다.
이 삶 앞에서 나는 어떤 의사였을까.
나는 괜찮은 의사였다고,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까.
불 꺼진 당직실, 처방 모니터 앞에 앉아
누군가의 마지막을 마음속에서 다시 걸어가듯, 조용히 하루를 되짚으며 이 글을 썼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당직실에서, 잠들지 못한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