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를 선택한 계기
새벽 3시,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인턴쌤, ER로 angio방까지 CPR 좀 치자.”
속으로 중얼쳤다. “아…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응급실에서 혈관조영실까지, 우리는 환자 베드를 밀며 달렸다. 나는 30분 넘게 가슴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압박을 멈추면 단순히 심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멈춘다는 생각뿐이었다. 온몸이 부서져라 손을 움직였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나는 점점 기계처럼 반응했다. C-arm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방사선 피폭조차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과 전공의 선생님이 17번의 제세동을 시행하는 동안, 나는 어깨와 손목이 나갈 듯한 통증 속에서도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쇼크 후 교수님이 말했다.
“자, 이제 됐다. 인턴 올라가 봐.”
나는 그대로 다른 병동으로 향했고, 피로에 젖은 채 그날 밤을 보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었던 다음 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드레싱을 갈고 L-tube를 삽입하고 있었다.
며칠 후, 퇴실 병동에서 평소처럼 radial cuff 드레싱을 하고 있었다.
“제가… 전기충격을 17번 받았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환자의 손목에 붙은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이었다. 내가 그 새벽, 30분 넘게 흉부압박을 했던 바로 그 환자였다.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 같아요.”
그 말이 내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두 번째 기회.
그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이유를 되찾았다는 뜻처럼 들렸다.
나는 눈물이 차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환자분, 기억납니다. 그날 제가 흉부압박을 했었거든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 계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감촉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가만히 잡고 있었다.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교수님께서 잘해주신 거죠. 퇴원 전에 회진 때 감사 인사 전해드리세요.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병실 문을 닫고 복도 끝으로 걸어 나와서야, 나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그날은 맑은 햇빛이 드는 평범한 낮이었지만, 내겐 처음으로 ‘의사’라는 이름 아래에서 눈물을 흘린 날로 기억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단지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두 번째 삶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가운을 조심스레 펼쳐 들고 있었다. 그 가운에는 아직도 그날의 공기와 체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선배들은 말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나를 무감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게 더 무서웠다. 살리기 위해 배우는 직업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무뎌질까 봐, 변명에 익숙해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써내려가기로 했다. 매일 쏟아지는 일들 속에서 감정은 흘러가기 바빴고, 어느새 나를 잊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의 순간을 기록하고, 흔들림을 담아두기로 했다.
이 책은 내과 전공의로서 내가 겪은 일화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배움과 교훈을 담담하게 적어보려는 시도다. 어쩌면 언젠가 이 길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지나온 하루하루가 작은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후회하거나 지칠 때, 내가 왜 이 길을 걷기로 했는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