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뭐가 그리 급해서
70대의 할머니 환자분은 내가 소화기내과 파트를 도는 한 달 내내 병동에 입원해 계셨다. 회진을 갈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날 반겨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웃음이 얼마나 따뜻했던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회진을 돌기 전, 간호사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환자 남편분께 병 얘기 절대 하지 마세요. 환자분이 끝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남편 걱정시키기 싫다고요.”
말기 직장암. 이미 뼛속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통증은 심했고, 진통제를 써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고통을 억누르며 남편 앞에서는 평소처럼 웃던 할머니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의 품이었다.
남편분은 아내가 직장암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셨지만,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셨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며 남편을 안심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한 번은 회진 중 잠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는 수척한 얼굴로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 걱정할까 봐요. 내가 아픈 건 괜찮은데, 그 사람 무너질까 봐 그게 더 겁나요.”
회진 중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우리 임자는 괜찮은 건가요? 요즘 들어 좀 더 아파 보이네요.”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꾹 눌렀다. 할머니의 뜻을 지키고 싶었다. “크게 나쁘진 않으세요. 통증 조절을 더 해볼게요.” 라며 애써 웃었다.
몇 주가 지나고 내 파트도 바뀌었다. 그렇게 부부도, 병실도,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치실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할아버지였다. 이미 싸늘해진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계셨다. 인턴이 조용히 튜브와 라인들을 제거하고 있었고, 방 안은 숨조차 멈춘 듯 고요했다.
할아버지는 눈가가 붉게 물든 채, 아내의 손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임자,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먼저 가는가. 당신 먼저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어머님 진료 봤던 전공의입니다. 기억하시죠? 어머님 정말 좋으신 분이셨어요. 아직도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분명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아, 네. 선생님 친절히 봐주셔서 기억납니다. 고맙습니다. "
할아버지의 시선은 다시 할머니를 향했다.
"임자,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제 푹 쉬어. 나도 곧 따라갈게.”
처치실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나는 말없이 곁에 섰다. 예전 그분을 돌봤던 전공의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그 순간,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죽음 앞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다했다.
아내는 끝까지 병을 감췄고, 남편은 끝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사랑의 가장 진한 형태를 목격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내가 먼저 떠나는 것이 더 두려울까.
남겨진 사람은 후회와 그리움 속에 살아가고,
먼저 떠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키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답 없는 질문 앞에, 나는 그저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