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곳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마주한 의외의 깨달음

by 나루

유럽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외국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전까지 나는 타국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며 깨달았다. '정말 내가 외국에서 살 수 있을까?'에 나의 답은 '아니'였다.

부다페스트가 별로였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만족한 경험들로 가득했다. 어부의 요새와 국회의사당 야경은 정말 눈이 부시게 예뻤으며,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세체니 온천에서는 아이처럼 신나게 놀았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 세체니 다리에서는 낭만 넘치는 저녁을 보냈다.

다리에서의 기억을 꺼내보자면... 앞쪽 길가에 노랗고 하얀 꽃이 가득 피어서, 나를 환영하는 듯했다.

세체니 다리의 도보와 도로 사이에는 올라가서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난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감상 중이길래, 나도 따라 했더니 눈앞에 환상의 뷰가 펼쳐졌다.

오른쪽에는 'PONTOON'이라는 라이브바가 있어서 신나는 음악이 크게 연주되고 있었다.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리듬을 탔다. 시간이 얼마큼 흐르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 순간을 즐겼다.

그 사이에 해는 자취를 감췄고 풍경은 대비가 강해졌다. 건물들은 모두 새까매지고 하늘이 그 색을 다 가져가서 그라데이션을 펼치는 것 같았다.

해가 져도 라이브 밴드의 공연은 계속되었다. 나는 가까이에서 더 즐기고 싶어 무대 앞쪽으로 갔는데, 관객들 사이에 있으니까 더 신이 났다. 밴드는 드럼, 퍼커션, 기타, 베이스,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로 이루어져 아주 풍성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너무 즐거웠던 시간이다!


그리곤 뒤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사실, 나는 여행 15일 차가 되는 이 날까지 제대로 된 한식을 먹지 못했다. 잘 차려진 밥상과 매콤 새콤한 맛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래서 '나눔 코리안 재패니즈 비스트로 펍'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메뉴는 한식과 일식을 모두 다루고 있었고, 함께 방문한 친구 A와 고심한 끝에 제육볶음덮밥과 돌솥비빔밥을 주문해서 나눠 먹기로 했다. A는 얼른 "밥을 퍽퍽 퍼먹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표현이 너무 공감되고 재밌어서 한참을 웃었다.

잠시 후에 음식이 서빙되었다. 섞어서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한식 없이 못 산다.'

매콤한 고추장, 불맛 나는 제육, 싱싱한 나물, 뜨끈뜨끈한 쌀밥과 김치 모두 눈물 나게 맛있었다. 감동은 첫 입으로 끝나지 않았다. A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감탄을 반복하며 모든 그릇을 비워냈다. 한국인 사장님은 우리에게 김치 꽁다리 찌개를 서비스로 주셨는데, 얼큰한 맛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타지에서 한식이 주는 안도감과 행복감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강렬했다.


그래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쪼그라들었다. 타국에서는 노력을 해야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처음으로 장기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다.

한인마트의 컵라면 가격은 무려 5천 원이었다.

대화할 때는 편한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고, 영어회화를 쥐어짜거나 파파고에 의존해야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내가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 신분이라는 게 너무나 어색했다.

낯선 문화는 재밌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만큼 내가 그들에게는 속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은 한국에 있다.


외국살이를 꿈꾸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여행을 끝내면 돌아갈 한국, 그 안에서도 가족의 품과 엄마의 집밥이 더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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