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처럼 따뜻하게

베네치아 부라노 섬, 리도 섬

by 나루

우연히 만난 외국인 할머니와의 대화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부라노섬에서 시작된다.


부라노 섬은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베네치아 본 섬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40분 정도 나가면 도착할 수 있다. 부라노의 집들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는 9색의 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9 분할 콜라주를 만드는 '퍼스널 컬러 샷'이 유명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나는 6색까지 찍은 후에 그만두었다.

부라노섬을 충분히 둘러본 후, 나는 해변이 있는 리도 섬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 J, 그리고 A와 인사를 하고 나는 따로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갔다. 리도 섬에 가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착장에는 나를 빼면 2~3명 정도가 있었고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굉장히 작은 체구에, 단정한 백발이셨고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시간에 맞춰서 리도섬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아까 배를 함께 기다렸던 할머니와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할머니는 갑자기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 이탈리아어인 것 같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할머니의 휴대폰 화면이 굉장히 어둡다는 건 알 수 있어서, 배터리를 확인해 보았는데 70% 정도였다. 이번에는 밝기 문제인가 싶어 상단바를 내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밝기가 최저로 설정되어 있었다.


곧바로 밝기를 올려드렸더니 할머니는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며 웃음을 지었다.

나도 웃음이 났다. 스마트폰을 서툴어하는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라 괜스레 친밀감이 들었다.


외국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해 보았는데, 서로 말이 하나도 안 통했다. 뭔가 물어보시길래 영어로 대답을 했는데,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그게 맞는 대답이 아니거나 못 알아들으신 것 같았다. 파파고를 돌려도 대화가 안 되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나는 구글지도로 대한민국을 보여주며 "제가 여기에서 왔다."라고 말했고, 그건 알아들으신 듯 했다. 또 "So hot!"이라며 손부채질을 했을 때는 할머니도 똑같은 동작과 말을 하면서 공감하셨다. 언어가 달라도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의 교류를 맺고 나선,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어느새 리도섬에 다다랐다. 그런데 배에서 내릴 때쯤 할머니는 갑자기 당신의 부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도와줘서 고맙다며 가지라는 듯했다. 나는 예상밖의 선물에 당황스러워서, 괜찮다며 사양하는 몸짓을 했지만 그래도 받으라며 건네주셨다.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라고 말하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나도 가방을 뒤져보다 작은 사탕을 찾아서 건네드리고,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일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억뿐만 아니라 부채라는 기념품도 있어서 더 그렇다. 만국 공통의 할머니들은 다 똑같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시던 모습에, 작은 도움에도 고마워하시며 뭐라도 주시려던 모습. 그걸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찡하다. 앞으로도 어르신들을 대할 때 항상 이해심과 배려심을 갖자고 다짐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해변가를 거닐었다.

리도섬은 휴양지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났다. 파라솔 아래에서 쉬거나 해수욕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파도를 보면서, 나는 아까 전의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리도섬에서는 저녁밥을 먹고, 해가 질 때쯤 섬을 나왔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이 보였다.

할머니가 전해주신 마음이 나를 포근하게 만들었다. 돌이켜서 나도 타인에게 그런 존재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넓은 바다처럼, 뜨거운 석양처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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