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건축물에서 시작된 사색
로마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가득했다. 판테온,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까지... 그 앞에 서서,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문득 생각했다.
가장 완벽한 건축물, 판테온
'천사의 설계'라고 불리는 판테온에 갔다. 기원전에 처음 지어진 후 소실되었다가 2세기 초에 재건된 게 지금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겉보기에 온전했는데, 실제로도 당대 건물들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그렇게 판테온은 굳건히 서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식 프로그램이나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건축물이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지만, 그 앞에서는 댄스 버스킹이 열리고 마차도 다녔다. 과거와 현대가 연결되는 느낌이라 참 보기 좋았다.
나는 미리 예약하지 않아 내부 입장은 못했지만, 그 대신 판테온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니 흠집이 난 기둥과 벽이 보였다. 그게 안타까우면서도 2천 년 역사에 비하면 잘 유지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장료가 판테온 보수에 사용된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판테온이 로마의 오랜 시간을 담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역사를 이어가길 바라게 되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빛나는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기원전 70~80년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로마제국 시대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다. 반쯤 무너졌더라도 그 위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청난 크기 때문인지 낮에도 밤에도, 멀리서도 가까이에서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그 앞에 서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콜로세움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은, 2천 년 후에도 이곳이 남아서 관광지가 될 줄 알았을까?' 절대 몰랐을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땀이 묻은 건축물은 몇 세기를 지나도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들을 감탄시키고 있었다.
그런 콜로세움의 옆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 포로로마노가 있었다.
폐허 같은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마치 야외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이드를 신청했으면 자세한 설명을 들었겠지만, 계획 없이 간 덕에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는 온전하지 않았지만 남은 것들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분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비 분수
1762년 5월 22일에 지어졌다는 트레비 분수. 분수는 사진보다 실물로 봤을 때 훨씬 더 멋있었다. 잠실역 지하광장에 있는 분수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정교한 조각상도 그랬지만, 분수의 물이 마치 에메랄드 바닷빛 같았다. 해가 쨍쨍한 만큼 윤슬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물속에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동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잔잔한 분수 소리까지 더해져서 트레비 분수는 나에게 힐링이었다.
한편, 트레비분수처럼 돋보이거나 화려하지는 않은 유적도 있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Vicus Caprarius- The Water City'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수로교 유적이 남아있어 구경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트레비 분수를 포함해 여러 수로에 물을 운반한다고 하니 지금도 로마를 지탱하는 든든한 근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판테온,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지하 수로.... 이 역사적인 장소들은 모두 다 사람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 유적을 만든 사람들 중 이름이 알려지는 이는 극히 소수이다. 건축가는 알려지지만, 건물을 직접 지은 수많은 일꾼들은 기억되지 못한다. 열심히 지은 건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름을 못 남기면 의미가 없는 걸까? 이름이 남지 못해도 내가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긴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갔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나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 첫 번째는 이렇게 글로써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비록 보는 사람이 적더라도, 인터넷에 떠도는 작은 글이 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책을 내는 작가가 되어 더 강한 삶의 증거를 남기고 싶다.
하지만 기록이 다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내가 전하는 마음, 그 따뜻함이 남아 이어진다면 그것 역시 내가 살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 긍정적인 말과 기운을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아니어도, 거대한 건물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작은 흔적들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