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실명의 존재들]
보부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귀를 막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사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보부상을 불쾌하게 하는 데에는 신체에 박힌 무언가를 뽑아내는 특유의 마찰음만으로도 충분했다.
보부상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놀랍게도 사내는 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뽑아낸 단검을 앞으로 내밀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할 의도가 담긴 자세가 아니었다. 사내는 단검의 손잡이가 아닌 날을 잡고 있었다. 보부상은 뒤로 약간 물러난 채 사내의 동태를 살폈다. 보부상은 사내가 저대로 죽은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런 생각을 떨쳐내었다. 사내는 멀쩡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진작에 쓰러졌을 부상이었겠지만, 사내의 목에서는 아무런 액체도 흐르지 않았다.
"내게는 필요가 없소. 받지 않겠다면 여기 두고 가리다."
사내는 단검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그 모습은 매정하기까지 했다.
"아니, 이보십시오! 어디를 가는 겁니까?"
"나도 모르오. 그대의 말대로라면 나는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셈이니,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저 바람과 물을 따라 마음 가는 대로 갈 뿐이외다."
보부상은 거의 포효하듯이 외쳤다.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당신은 대체 뭐죠?"
사내는 고개만 옆으로 돌린 채 곁눈으로 보부상을 쳐다보았다.
"처음 보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 같은 이를, 처음 보느냐는 말이오."
"그런 가당찮은…… 그래요. 처음 봅니다! 목에 칼을 맞고도 죽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이제 내 질문에 답해 주시지요. 당신은 대체 뭡니까? 혹 내가 이미 미쳐 환영을 보고 있기라도 한 겁니까?"
"나는 죽지 못해 살고 있소. 그리고 세상에는 나 같은 이가 한둘이 아니오. 잘 유념해 두시게."
보부상은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내는 목에 칼이 꽂히고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이가 세상에 한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보부상에게 더할 나위가 없는 끔찍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보부상은 이 모든 일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치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는 편이 그로서는 나았을 것이다. 사내는 천천히 걸음을 떼며 말했다.
"그대는 혼자인 듯한데, 혹 나를 따라오고 싶다면 그러시오. 동반자가 있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사막의 밤바람은 차갑소."
보부상은 눈을 감고 묵언했다.
"대답이 없구려. 거절하는 것으로 알겠소. 내 비록 그대의 이름은 모르지만, 죽지 않으면 또 만납시다."
보부상은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사내가 눈앞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림을 느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머지않아 그 행위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의 시야 한편에 무언가가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것의 매끈한 표면은 그 자신 내부에 또 하나의 불꽃을 얼비치고 있었다. 보부상은 미적거리며 기어간 뒤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그가 집어든 것은 금속성의 단검이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사실임을 깨달은 그는 비참함을 느꼈다. 비단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스스로 입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유를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결국 장작불이 검게 탄 숯덩이가 될 때까지 자신이 비참함을 느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그는, 그저 그 단검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