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나는 더 단단해질 거야

소음 속에서 진짜 나를 찾는 철학

by 알파시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세상은 시끄럽다.

벌써 단톡에 날아든 간만의 미국 증시 이야기.

생일 알람, 뉴스 속보, SNS 피드, 구독해놓은 유튜브 채널 소식, 쉴틈없이 그리고 끝없이 울리는 알림창.


누가 잘했다, 누가 틀렸다, 이게 옳다, 저건 아니다. 모두들 말한다. 나에게도 말하라고, 반응하라고, 선택하라고.


하지만 요즘 나는 다르게 해본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나는 더 조용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더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소음 대부분은 나와 상관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소음의 정체를 파헤치다


생각해보니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불안을 떨쳐내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확신 없는 사람일수록 더 큰 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외친다. 내면이 흔들리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선택을 더 격렬하게 비판한다. 자신만의 기준이 없는 사람일수록 남의 기준을 가져다가 더 열심히 설교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시끄러운 건 모두가 답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답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떠도는 소리일 뿐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소음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됐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뭘까?'






질문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조용해지니 그제야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말 이걸 원하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자신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뻔한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행복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계속 파고들면 더 구체적인 것들이 나온다.


"나에게 행복이란 뭘까?"

"성공이란 정확히 어떤 상태일까?"

"왜 그것을 원할까?"


이런 질문들을 반복하다 보면,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이 생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생기는 순간, 세상의 평가에 덜 휘둘리게 된다.






선택하지 않은 것의 무게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무한한 선택지'다. 결정장애!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떤 일을 할지, 누구와 만날지.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후회한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지만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다. 왜냐하면 자유롭도록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는 축복이자 저주다. 하지만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은 더 단단해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애초에 내 길이 아니었다고.

내가 그 때 그 여자와 만났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졌을까? 내가 한 선택에 감사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게 더 열심히 메꿔나가야지 하는 마음.

선택의 기로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하며 아쉬워하는 대신, 내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굳이 믿는 것이다.


후회는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고, 나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까.






단단함의 진짜 의미


세상 사람들은 '단단함'을 잘못 이해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 상처받지 않는 것이 단단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단단함은 다르다. 상처받아도 일어날 수 있는 것, 흔들려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넘어져도 다시 걸을 수 있는 것이 진짜 단단함이 아닐까?


나의 힘으로 스스로 회복하는 탄력성.

거기에 자기다움, 나다움, 즉 아름다움이 얹어지면 그냥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에 정형돈이 방송에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름'이라는 옛말이 '나' 이고 나다울 때 아름답다라고.

아름다움은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이나 개성을 훌륭하게 발휘하는 것을 얘기한다고 말이다.


나무가 태풍을 견디는 방법은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이다. 바람에 맞서 꿋꿋이 서 있으려 하는 게 아니라,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도록 유연함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소음에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내 중심을 깊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큰 소음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시끄럽게 떠들 때 조용히 자신만의 일을 하는 사람, 트렌드를 좇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간디도, 스티브 잡스도, 괴테도 모두 그랬다. 그들은 세상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결국 시대를 바꿨다.






세상은 앞으로도 시끄러울 것이다. 아니, 더 시끄러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조용해질 것이다.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보고, 더 많이 질문하고, 더 확실한 내 기준을 세울 것이다.


그렇게 묻고, 배우고, 단단해질 것이다. 세상이 나를 흔드는 대신, 내가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하나를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진짜 혁명은 조용한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는 걸.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