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서려 한다는 사실
고통만큼 상대적인 게 있을까 싶어.
지금 지구촌 어디에선간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알 거야.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을 알지 못해.
안다면 그저 동정에 기대어 얼마 간의 기부를 하는 정도로 그 죄책감을 떨쳐 버리려 하겠지.
또는,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고 상대적인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어.
눈앞에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보다 지금 내 손톱 아래 박힌 작은 가시가 더 큰 고통인 거야.
왜 그럴까?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 수 없고.
또 누군가의 고통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야.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고통을 대신해줄 순 없어.
그렇다면 결국, 고통은 온전히 내 것이란 이야기야.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는 있겠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완벽하게 헤아려줄 순 없어.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그저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며 조금이라도 털어버리려는 과정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까.
다시, 고통은 온전히 내 것이야.
내가 안아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신은 사람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준다는 말이 있어.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
견딜 수 있는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는 걸 알아채야 해.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일을 마주해야 비로소 성장하게 돼.
넘어져도 일어나는 건 견딜 수 있는 고통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넘어져 있는 걸 견디지 못하기에 다시 일어나는 거야.
견딜 수 없기에 성장하고, 일어나고.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야.
지금 내게 주어진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거라 포장하지 마.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발악해야 하고, 그러하기에 깨어 있어야 해.
세상에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없어.
그건 상대방이 내 고통에 개입하지 않은 채 던지는 가벼운 몇 문장일 뿐이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그 고통을 덮지 마.
이 또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 또한 잘 보내야 해.
고통은 온전한 내 것이므로, 내 고통엔 누구보다 주체가 되어야 해.
나 자신에겐 그 누구보다 뛰어나야 해.
나를 잘 알고, 나에게 뛰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에 달려있어.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 거짓말을 믿지 마.
견딜 수 없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서려 한다는 걸 떠올려.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고통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