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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파도를 닮았네

2025. 07.

by 디미드

돌아오는 주말까지 보령에는 머드축제가 한창이다. 올해 초부터 부지런히 관련 기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덕분에 머드축제 기간 중 이틀 동안 진행되는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20살 언저리 친구들과 대천해수욕장 근처 펜션을 잡고 놀러 왔던 것 말고는 뚜렷한 기억조차 없던 보령. 다시 이렇게 인연이 닿을 줄이야. 덕분에 올해는 서해바다를 실컷 보고 있다.


공연을 한 주 앞두고 공연장 점검차 다시 보령에 왔다. 한적했던 지난 몇 달과 달리 폭염 경보가 계속 울리는 날씨에도 대천해수욕장은 머드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어딜 가든 붐볐다. 슬그머니 그들 속에 뒤엉켜 공연이 있을 무대를 확인한 뒤 관계자 미팅이 끝나자마자 음향 팀과 필요한 장비를 한 번 더 체크하고 나서야 무대 옆으로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PD님, 저 바다 쪽 무대 좀 확인하고 올게요.”


밤에 있을 다른 공연 무대를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와 그늘이 있던 모래사장에 잠시 앉았다. 바다에 있는 무대는 사실 보령에 오자마자 체크했던 곳인데 잠깐의 휴식을 위한 핑계였달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번 지나가고 나니 신기하게도 파도 소리만 들려왔다. 혼자 멍하니 바다를 보는 이 순간이 참 좋다가도 옆에 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서로 왔다 갔다 하던 찰나. 습관처럼 몇 분 전에 올린 내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예전에 좋아했던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딜 또 놀러 간 거야?”

“나 일하러 왔어.”

“더운데 몸조심해.”

“응, 너도”


DM으로 몇 마디 오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온통 알 수 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더 늦기 전에, 그녀를 좋아했던 그해 여름에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떠오르는 기억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서히 그녀가 마음에 들어오던 시간, 엇갈린 일상에 누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해 헤어지던 그날까지.


다시 들리는 파도 소리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해변에 그 많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앉은 자리 앞으로 다가오는 파도와 멀리 지평선만 눈에 들어왔다. 개운하지도 찝찝하지도 않은 묘하게 몽롱한 기분이었다. 오늘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나 공연 준비로 다시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머릿속이 비워지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무더운 여름이 느껴졌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공연. 1박 2일 동안 보령에서 필요한 짐을 챙기다가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한 문장이 떠올라 서둘러 손에 있던 것들을 가방에 꾸겨 넣고 책상에 앉았다.


2023년,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사랑이란 뭘까요?' 나는 별생각 없이 '사랑은 파도 같은 게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다들 박수를 치길래 다음에 또 써먹어야지 하고 메모를 해두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무의식 어딘가에 사랑과 파도에 대한 생각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랑과 파도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들은 어디선가 서로 만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쓴다. 해변에 먼저 도착해 부서진 파도들은 다시 모래 속에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사랑에 지친 사람도 돌고 돌아 새로운 사랑으로 회복한다. 세상의 수많은 글과 가사에서 표현하듯 사랑은 영원하니까. 파도도 마찬가지.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결국엔 어딘가에 다다르는 것도 닮았다. 가는 길에 방향을 틀거나 모양이 조금 바뀌어도 문제 될 게 없다. 누구를 탓할 이유도, 누가 나무랄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며칠 전 바다 앞에서 생각난 그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게 다녀간 모든 사랑이 파도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사랑은 정말 파도를 닮았네."


8. 사랑은 파도를 닮았네.jpg 2025년 7월 대천해수욕장 공연장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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