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렇게 힘겨운 사회생활을 해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에서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자로 넣어놨었는데 차례가 온 것이다.
금액적으로는 사설 어린이집 보다 훨씬 유리해 기쁜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안 그래도 힘겨운 아이에게 또 낯선 사회로 갈아타야 하는 도전을 하게 만든 것이다.
다음날부터 아이의 등원거부가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겨우겨우 어린이집에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면 "엄마~ 엄마~ "하는 울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리고, 나는 그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밖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시에서 하는 어린이집이라 사설 어린이집에 비해 원생수가 너무 많아서 선생님도 아이 하나하나에게 신경을 써주시지 못했고, 우는 아이가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몇 번이나 민원을 넣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입이 짧은 아이는 더 식욕을 잃어갔고 점점 더 야위어 갔다.
모든 질병에 늘 취약했으며 모든 것이 피폐해져 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등원 전 아이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주던 아침이었다.
왼쪽 귀 뒤편이 이상하게 휑했다. 오른쪽과 비교해 봐도 한눈에 비어 보였다.
아이에게 '원형 탈모'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회사에 급하게 월차를 내고, 고양시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 유명한 탈모전문 교수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예약을 안 하고 와서 평일인데도 2시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종합병원에서는 원래 친절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하지만 그 교수라는 인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나에게 불친절한 것은 백번 양보할 수 있다.
들어갈 때부터 환자와 눈도 안 마주치고 툭툭 내뱉듯 말하는 건 둘째치고 어린아이에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낯선 사람이 자기 머리를 들춰본다고 울기 시작하자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애가 성격 진짜 이상하네~ 이런 애를 어떻게 치료를 해요? 올 때마다 치료하는데 30분씩 걸리는데!! 난 자신 없어! "라며 투덜거렸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교수라는 사람이 환자에게, 그것도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지..
본인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환자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옆에서 도와주는 인턴에게 "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해? " 라며 욕설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의사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 지금도 교수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탈모치료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쓰인 기사가 있다는 거 보면 인터넷 세상은 믿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치료도, 약도 받지 못한 채 병원 문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아이를 안고 가는데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오면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이를 이렇게 고생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나...
나도 불쌍하고 아이도 너무 불쌍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어서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한참을 울었다.
그 길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도저히 못하겠어.. 한계야 한계!! 회사 그만둘 거야.!! "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그래 그만둬~ 그만하면 됐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이 고맙긴 했지만 아이가 둘이나 되는 우리 집 형편에 당시 남편 월급 만으로는 생활이 될 리가 없었다.
밤새워 고민한 끝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아이랑 있는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고 또다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조금 비싸더라도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다시 복귀시켰고 아이는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한 두 달이 지나자 원형탈모가 생겼던 부위들은 다시 머리카락들로 채워지면서 원상 복귀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지진 전에 오는 잦은 지진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