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

인사, 170429

by 하봄

몸이 처지고 몽롱한 기분이야

약봉지에 쓰여있던 어지럼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네

그래서 어지러운 것 같아

아침에 의사는 절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어

지금은 밤이야

그래서 술을 마셨어

한 잔 아니고 한 병

반 병만 마셔도 인사불성이 되던 어린 날이 그립다

아 지금은 더 어지러운 것 같아

평소 다니던 길이 유독 굽어보이거든

가로등과 멀어졌을 때 차에 치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그저 내 몸이 빨리 부서지길 바라거든

사실 지금 내가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오늘 정말 비참한 생각을 했어

창문도 없는 고시원 방에서 썩어가고 있어서 그런가

사람 많은 병원에 가니까 외롭지 않더라고

사람이 그리웠나 봐

좁은 방에서 벽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게 지겨워졌어

목표 없이 펜을 잡는 건 최고의 시간 낭비야

근데 요즘 없던 꿈이 생겼어

별 건 아니고 그냥 그만하고 싶다는 거야

항상 목표를 가지라고 꿈이 없냐고 구박받았는데

그때의 어른들이 지금 내 목표를 듣는다면 칭찬해 주실까

내 대답은 절대

창문 없는 감옥에 거의 다 왔는데 들어가지 않아도 돼

하늘이 그만하고 싶다는 내 소원을 들어줬네

가로등은 멀리 있고 차는 멀어진다

이제 쉬러 갈게


나처럼 살지 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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