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01화

감정의 배설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우울증 극복기

by wordsfromulsan

배설

1.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함.
2. 동물이 섭취한 영양소로부터 자신의 몸 안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얻은 후 생긴 노폐물을 콩팥이나 땀샘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일.

모든 생명체는 배설해야 한다. 인간 또한 그러하다. 숨을 들이마셨으면 뱉어야 하고, 음식물을 섭취했으면 대소변으로 배출해야 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과하게 섭취한 영양소는 운동을 통한 움직임과 땀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건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신체적인 배설을 잘 관리하려 애쓴다. 그러나 우리를 구성하는 건 신체만이 아니다. 정신 혹은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와 대등한 존재로써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린 감정의 배설도 신경 쓰고 있는가?

신체의 배설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 결과는 대부분 눈에 바로 띄기 마련이다. 비만을 비롯한 온갖 질병들이 당신의 신체는 정상이 아니라고 경고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린 운동을 하거나 병원을 가곤 한다. 그리고 우린 이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감정은 배설되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건강하지 않아도 잘 모를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게 느껴져도 애써 모른 척하거나 숨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강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들도 다 그 정도는 안고 산다며 괜찮다고 하기도 한다. 배설하지 못한 온갖 노폐물을 체내에 저장한 채 병들어 있지만 병원을 가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건강하고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감정도 신체와 같다.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을 배설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물론 나도 앞서 표현한 과정을 겪었다. 배설되지 못한 감정들이 쌓였고, 남들도 다들 그 정도는 안고 사는 줄 알았고, 오롯이 버티면 굳은살이 되어 더욱 강해질 줄만 알았다. 그러다 술에 취한 내가 지인들 앞에서 요실금 마냥 자의적이지 않은 판단으로 배설했을 땐 다음 날 후회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후회라는 감정 또한 쌓았다. 불필요한 감정들을 쌓고 쌓고 또 쌓았다. 그렇게 배설되지 못한 감정은 당연히 나를 병들게 만들었고 결국 응급실로 이끌었다.

그때 내가 배설하지 못했던 감정에는 세 개의 이름이 붙었다.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이었다.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감정들엔 그런 이름표들이 붙어있었고 스스로 배설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의사는 꺼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의 이런 노력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이미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이 감정들은 사랑, 의욕, 행복 등 정말 필요한 감정들을 구석으로 몰아낸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내 눈엔 보이지 않았고 내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의사는 나를 꽤 응급한 환자로 보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어디로 흘러도 상관없었던 내 마음의 물줄기를 폐수처리장이 아닌 바다를 향하는 강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감정의 배설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과거 다른 것은 모두 잊은 채 몰입해 내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던 음악과 영화도 이젠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운동은 스스로 해낼 만큼의 의욕이 앞서지 않았다. 한 때는 책도 많이 읽었지만 갈수록 내용에 빠져들기보단 의미 없이 눈알만 굴리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약물이 있었기에 조금씩 배설되고는 있었지만 채워지지도 않았다. 그저 텅 빈 껍데기만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없는 날엔 그저 집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많아졌다. 퇴원 후 내 상황을 의사에게 아무리 떠들어도 배설되어 비워진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 쌓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다시 응급한 누군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약물에 의해 미미하게 덜어내는 게 아닌 직접적으로 토해내는 방법이 필요했다. 내 배설물이 내 눈앞에 끔찍한 난장판이 될지언정 내 눈으로 이것들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통해 배설되는 것들이 추악하건 나약하건 상관없다. 결과물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말해줄 것이다. 나를 거울처럼 비춰줄 수 있는 것은 글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로 인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그게 내 새로운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디 시간이 많이 지나 이다음을 잇는 글이 탄생할 땐 건강한 감정들이 순환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에게 묻는다. 당신은 감정의 배설을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 건강한 감정들이 내면을 순환하고 있는가? 아니면 배설물들로 가득 차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강한 줄 알고 여전히 안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이가 글쓰기로 배설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내 판단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자신이 정말 감정들을 잘 배설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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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