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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로고스_투어
(파주 출판단지 북카페거리)

with 하이데거, 푸코 Heidegger, Foucault

by 리얼흐름

서울역 플랫폼.

경의중앙선 열차가 들어오자 진우는 배낭을 메고 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운정역까지의 50여 분 동안 주머니 속 책을 꺼냈다.

흐린 봄 하늘 아래 경기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운정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탄 뒤 ‘출판도시’ 안내 표지판이 보이자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바람이 살짝 차가운 봄날이었다.

책거리 골목에는 크고 작은 서점과 북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종이 냄새와 커피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진우는 한 중고서점 앞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다.

옆자리에서 책을 덮은 사내가 있었다.

환한 머리에 검은 터틀넥을 입은 미셸 푸코였다.


푸코: “그 책이 당신을 해방시켜 줄 거라고 믿나요?”
진우: “... 아니요. 지금은 오히려 나를 가두는 기분이에요.”
푸코: “흥미롭군요. 왜 그렇게 느끼죠?”
진우: “머릿속은 가득 차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숨이 막히거든요.”
푸코: “그렇다면 그건 지식이 아닙니다. 단지 지식의 규율이 당신을 조이는 겁니다.”


미셸 푸코와 몇 마디 더 흥미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진우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집중하고

싶어서 책을 다시 덮었다.

그 순간 골목 끝에서 베이지색 외투에 중절모를 쓴 사내가 다가와 자연스럽게 앉았다.

둘은 미리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듯했다.

푸코: “이건 자유를 말하지만, 당신은 왜 늘 침묵을 이야기하죠?”
하이데거: “말로 존재를 붙잡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인간의 오만이죠.”
진우: “그렇다면... 우리는 책을 왜 읽는 걸까요?”
하이데거: “책은 길이 아니라 표지판일 뿐입니다.”
푸코: “표지판이 잘못 가리키면 당연히 우리는 더 멀리 돌아가죠.”


세 사람은 북카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테이블의 동그란 모양 따라 가장자리를 스쳤다.

푸코가 주문한 소금빵과 진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진우: “우리는 언제부터 지식이 많을수록 덜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푸코: “지식은 도구입니다. 누가 쥐느냐에 따라 감옥이 되기도 하죠.”
하이데거: “침묵이야말로 진짜 사유의 언어입니다.”
진우: “침묵이 사유라면... 지식은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하이데거: “생각을 소음 속에 가두는 것이 바로 지식의 함정입니다.”


파주북카페(하이데거푸코)본문.png


푸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푸코: “그렇다고 무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에요. 무지는 더 깊은 감옥이니까.”
진우: “그렇다면 도대체 진정한 해방은 어디서 오는 거죠?”
푸코: “지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규율을 넘어서는 것. 그 순간이 해방이죠.”
하이데거: “그리고 그 구조를 넘어선 뒤 마침내 침묵 속에 머무는 것도 해방이고...”
진우: “결국은 지식과 침묵을 함께 배워야 한다는 거군요.”


카페 앞 골목으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오갔다.

책을 든 아이, 카메라를 든 연인, 손에 원고를 든 작가 지망생이 그들의 주변을 스쳐갔다.

진우: “여기 출판도시에 있으면 세상이 책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아요.”
푸코: “책은 세상을 기록하지만 세상을 대신하진 못하죠.”
하이데거: “대신한다고 믿는 그 순간! 우리는 존재를 잊어버립니다.”
진우: “존재를 잊지 않는 법은 뭘까요?”
하이데거: “지식 뒤에 숨어 있는 침묵을 듣는 것이죠.”


소금빵의 고소한 향이 바람을 타고 번졌다.

진우: “당신의 말처럼 지식이 감옥이 될 때 우리는 그걸 깨닫기나 할까요?”
푸코: “대부분은 못합니다. 감옥이 너무 편안하니까.”
진우: “편안함이 꼭 나쁜 건가요?”
하이데거: “편안함은 존재를 잊게 하는 달콤한 마취제입니다.”
푸코: “그리고 그 마취제는 바로 권력이 제공합니다.”


봄바람이 무언가를 깨우쳐 주려는 듯 강하게 불어왔다.

하이데거는 모자를 눌러쓰고 푸코는 마저 남은 커피를 마셨다.

진우: “그렇다면 지식은 자유일까요? 아니면 감옥일까요?”
푸코: “둘 다입니다.”
하이데거: “자유와 감옥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진우: “그 ‘서 있는 자리’를 바꾸는 건 결국 저죠.”
푸코: “맞아요. 그리고 그걸 바꾸는 게 해방입니다.”

골목 끝에서 다시 한번 세찬 바람이 불자 푸코가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했다.


둘의 약속된 만남을 더 이상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진우는 먼저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후 돌아본 그 둘은 진우가 자리에 함께 있을 때보다 더욱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봐도 대부분 푸코는 말하고 하이데거는 듣는 것 같았다.


'책으로 지식을 쌓으려 했지만 책 밖에서야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보였다. 말로 쌓인 세계는 정답을 주지 않았지만 일정량의 침묵은 끝내 나를 질문하게 했고 대화를 통해 책 보다 나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지식은 벽일 수도, 창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창을 자주 열어야겠다. 나 스스로가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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