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순천역에서 내린 진우는 자전거를 빌려, 강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늦여름의 해는 이미 기울어 물빛은 주황과 붉은색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
갈대밭이 길 양옆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출렁였다.
전망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난간에 기대어 서니, 저 멀리 붉게 물든 해가 갈대의 꼭대기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옆 벤치에 푸른 셔츠 위에 필드 재킷을 걸친 여인이 조용히 앉아,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레이첼 카슨: “지금 저 바람에 수많은 생명이 말하고 있어요. 다만 우리가 듣지 않을 뿐이죠.”
진우: “그 말이 라면... 소리? 말씀이신가요?”
레이첼: “소리일 수도 있고 그냥 흔들림일 수도 있죠. 중요한 건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들이느냐예요.”
진우: “자연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면, 왜 우린 그걸 못 듣는 걸까요?”
레이첼: “우린 인간의 언어로만 세상을 보려 하기 때문이죠. 자연은 숫자보다 침묵과 반복으로 말해요. 같은 바람이 불어도 그 안의 의미는 매번 조금씩 다르죠.”
진우: “그럼, 인간이 자연의 언어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이첼: “기다리고, 관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부터 익혀야 해요. 바다와 숲이 우리에게 말을 건넬 때 대답하지 않고 그냥 듣는 거죠.”
갈대밭에 해가 더 기울자 두 사람은 소박한 도시락을 꺼냈다.
레이첼: “이 꼬막... 정말 바다 냄새가 진하네요.”
진우: “순천 꼬막무침은 이 지역의 작은 바다 같아요. 새우젓 넣은 호박전은 집에서 먹던 가을 맛이고요.”
레이첼: “음식도 생태의 일부예요.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가 그 지역의 자연을 드러내죠. 우리가 먹는 방식이 곧 자연을 기억하는 방식이니까요.”
진우: “그렇다면... 무심코 먹는 한 끼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네요.”
레이첼: “맞아요.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게 환경을 지키는 첫걸음이죠.”
진우: 당신은 현대 환경오염 및 환경 보호 단체들의 출발과 관련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책이라는 '침묵의 봄'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레이첼: "저는 언제나 자연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이에요.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이기 때문이죠."
하늘이 점점 붉은 기운을 잃고 보랏빛으로 번져가자, 습지 너머에서 새 떼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레이첼: “저건 자연이 우리에게 작별 인사하는 방식이에요.”
진우: “그렇다면... 전 이제야 조금 들리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가 어떤 목소리로 끝나는지.”
레이첼: “그 목소리를 잊지 마세요. 도시로 돌아가면 금방 소음에 묻혀버릴 테니까요. 그러나 그 소음 안에서도 분명히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을 거예요. 듣는 연습을 항상 기억하시고요. 그 자연의 말이 속삭임일지 외침일지는 모르죠. 아마 당신이 어떻게 듣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레이첼은 무언가를 계속 관찰하고 쓰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갈대밭이나 지나다니는 작은 새를 관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관찰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은 관찰을 넘어 자연 그 자체와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자전거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순천만의 갈대밭... 자연은 늘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오랫동안 말이 많은 세계에만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갈대를 흔드는 게 아니라, 갈대가 바람을 불러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자전거를 탄 진우의 머리카락을 단숨에 넘기는 강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에 계속 불어왔다. 진우에게 필요한 호흡보다 몇 배는 센 숨결 같은 바람이 느껴졌다. 진우는 고개를 살짝 숙여 바람을 피하며 자전거를 탔다. 그 순간 순천만 갈대밭의 바람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진우는 정확히 그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