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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로고스_투어
(안동 하회마을 2)

with 장자 2 Chuang-tzu 2

by 리얼흐름

가을빛이 연한 오후였다.

어제의 하회마을과는 다른 현대식 숙소에서 잠을 깨고 짐을 챙겼다.

어제 장자와의 만남을 기억하던 진우는 갑자기 떠오르는 여러 질문에 안동역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진우는 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입구까지 다시 왔다.

날씨는 어제와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돌담길 사이를 스쳤다.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택 앞에 이르자, 나무기둥에 기대선 기와지붕이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진우는 마루에 올라 참기름찰떡을 곁에 두고 대추차를 따랐다.

김이 은은히 피어올랐다.

노트를 펼치려는 순간, 장승 옆에서 짚신을 신은 수염 난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장자: “아직 가지 않았나? ”
진우: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질문이 남아서요. 역시 오늘도 계셨군요.”
장자: “물은 흐르고, 생각도 흐르지. 그러나 이곳은 잠시 고여 있기도 좋기에 머물렀네."

진우: “하회마을 같은 전통이 때로는 진보를 막는 건 아닐까요?”

장자: “진보와 전통이 같은 강을 흐르는 물이라면 물살만 다를 뿐이지.”
진우: “하지만 느리면 뒤처지잖아요.”
장자: “느리다는 건 달리는 방향이 같을 때만 문제일세. 방향이 다르면 빠름도 느림도 무의미하지.”
진우: “그럼 다른 방향으로 가면 전통이 변하잖아요.”
장자: “전통은 원래 변하는 것일세. 변하지 않는 건 죽은 전통이지.”

진우: “그럼 전통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나요?”

장자: “물처럼 모양 없이... 모양을 고집하면 전통은 껍데기만 남는다.”
진우: “형식을 버리면 아무것도 안 남는 건 아닌가요?”
장자: “형식을 버려도 감각은 남는다네. 감각이 전통을 이어주는 진짜 힘이야.”
진우: “감각이라... 조금 모호하네요.”
장자: “가을 냄새를 맡으면 아는 것처럼, 들판의 바람을 느끼면 알듯이, 전통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네.”


경북안동하회마을(장자2)본문.png


바람이 기와 위를 스치고, 먼발치에서 하회탈을 쓴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진우는 참기름찰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진우: “이 마루에서 느껴지는 건 오래된 시간 같아요.”
장자: “그대가 지금 마루에 앉아 있는 것도 전통 속의 움직임이지.”
진우: “움직임인데, 왜 이렇게 고요하죠?”
장자: “고요 속에도 흐름은 있네. 강바닥의 물살처럼 눈에 안 보일 뿐.”


장자는 어느새 진우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는 발걸음 소리가 아예 없는 것처럼 조용하게 걸었다.

진우: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전통이 사라질까 봐.”

장자: “변화를 막으려는 순간, 전통은 더 빨리 죽는다네.”
진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장자: “흐르는 강물에 손을 담그듯, 조금씩 섞이며 흘려보내야지.”
진우: “그렇게 하면 원래의 맛이 옅어지지 않나요?”
장자: “맛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네. 변하지 않는 건 돌멩이뿐이야.”


멀리서 단체 관광객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진우: “요즘 관광객이 늘면서 하회마을도 변하죠. 상점, 카페, 기념품...”

장자: “그것도 흐름의 일부라네. 문제는 껍데기만 남기고 속이 비는 경우지.”
진우: “속이 빈 전통은 어떻게 구분하죠?”
장자: “그 안에 사람의 숨결이 있는지 보면 된다네.”
진우: “숨결이요?”
장자: “그렇지. 숨결이 닿으면, 오래된 것도 다시 살아날 걸세.”


예전에 만난 공자와 맹자, 순자, 한비야 등 동양 사상가들의 만남과 대화를 떠올리며 물었다.

진우: “전통과 진보,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장자: “강의 어느 쪽 물이 더 중요한지 물어보는 것과 같다네.”
진우: “둘 다 필요하다는 거군요.”
장자: “둘 다 흐르고, 둘 다 바뀐다.”

진우: “그럼 변하지 않는 건 없나요?”
장자: “변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사실뿐이지.”


바람이 다시 불었다. 대추차의 향이 부드럽게 퍼졌다.

대추차를 음미하고 장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자: “기억하게. 전통은 박물관 안이 아니라, 자네처럼 숨 쉬고 있는 사람 속에 산다네.”
그 말과 함께 그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장자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진우는 노트를 꺼냈다.

“안동 하회마을. 버스에서 내린 후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고택의 마루에 앉았다. 대추차의 온기가 손끝에 스며들고, 참기름찰떡의 달콤함이 바람에 실렸다. 이틀 동안 만난 장자는 전통을 물에 비유했다. 고집하면 고이고, 흘리면 산다 했다. 나는 전통이 내가 딛는 땅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흐르는 강물일 수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이제 이곳을 떠날 충분한 준비가 된 것 같다. 떠난다는 것도 흐름의 일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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