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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로고스_투어
(강릉 단오제)

With 헤겔, 무당 Friedrich Hegel, pythoness

by 리얼흐름

진우는 강릉 남대천 둔치에 도착했다. 단오제를 맞아 천막과 무대가 즐비했고, 곳곳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웃었고, 장터에는 국수와 단오떡이 팔렸다. 무대 위에서는 단오굿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곳에 두 인물이 있었다. 한 사람은 절대정신의 체계를 말한 철학자 헤겔과 다른 한 사람은 무속적 영성의 목소리를 지닌 한국의 여자무당이었다.


진우: “단오제는 놀이와 제사가 함께하니 삶 전체가 어울린 듯합니다.”
헤겔: “모든 것은 이성의 체계 안에서 드러나지... 놀이와 제사도 하나의 정신적 작용이라 할 수 있지.”
무당: “정신은 체계가 아니라 울림이죠. 북소리와 춤사위 속에서 신과 사람이 만나기 때문이죠.”
진우: “체계와 울림이라… 같은 단오제에서도 다른 얼굴이군요.”


그들은 자리를 옮겨 씨름판으로 향했다. 씨름판에서는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일반적이지 않게 팽팽한 경기의 양상이었다.

헤겔: “씨름은 변증법과 같지. 맞서 싸우며 새로운 합을 낳기에...”
무당: “아니, 씨름은 굿이죠. 땅과 땀이 만나 영혼을 일깨우기에...”
헤겔: “합리적 싸움이 공동체를 세운다.”
무당: “신과의 만남이 공동체를 지킨다.”
진우: “싸움과 만남이 씨름 속에 함께 있네요.”


씨름이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웃는 모습이었다. 땀과 범벅이 되어 몸에 뒤엉킨 모래들이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헤겔: “현재 한국은 어떤가? 이성의 체계로 움직이는가?”
진우: “겉으로는 법과 제도가 있지만 내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무당: “그 혼란 속에서 무당이 불려 가기도 하지요. 제도가 풀지 못한 매듭을 굿이 풀 수 있기 때문이죠.”
헤겔: “굿은 이성의 미숙함 아닌가?”
무당: “이성은 굿의 빈자리일 뿐이죠.”
진우: “현재 한국은 법과 굿, 둘 다 여전히 살아 있어요. 그래서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세 사람은 단오국수와 수리취향에 속 안 가득히 단팥이 품은 수리취떡, 그리고 옥수수막걸리를 주문했다.

진우: “강릉의 국수는 담백하고, 수리취떡은 일품이지요.”
헤겔: “음식도 정신의 산물이지. 역사와 문화의 체계 안에 있기 때문이네.”
무당: “음식은 제물이죠. 조상과 신에게 바치는 울림이니까.”
헤겔: “제물조차 결국 체계 안의 관념일 뿐이오.”
무당: “관념이 아니라 호흡이겠죠. 씹고 삼키는 행위 속에 신이 있으니까.”
진우: “체계와 호흡이 한 그릇 안에 담겼군요.”


강릉단오제(헤겔,무당).png


헤겔과 무당은 모든 의견에 대립했다. 아마 본능적으로 서로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우는 식사가 끝나자 둘을 데리고 그네가 잘 보이는 벤치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헤겔: “그네는 자유의 운동이군. 상반된 움직임 속에서 균형을 찾고 있으니...”
무당: “그네는 하늘로 가는 다리이죠. 인간이 신에게 닿으려 몸을 던지니까.”
헤겔: “균형이 자유다.”
무당: “아니죠. 도약이 자유다.”
진우: “저에게는 균형과 도약의 두 가지 자유가 함께 느껴지네요.”

무당: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제사와 의례를 지키지 않아!”
진우: “맞아요.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 축제와 공연이 의례처럼 기능합니다.”
헤겔: “변하는 문화는 새로운 정신의 단계이지. 예술과 국가가 의례를 대신하지는 않나 보군.”
무당: “축제에 신명이 없으면 껍데기일 뿐인데...”
진우: “맞습니다. 많은 축제가 신명보다는 소비와 구경에 머물죠.”
헤겔: “소비도 정신의 운동이지.”
무당: “소비만 있으면 혼이 없어질 거예요.”

헤겔: “정신은 역사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법. 굿은 원시적 단계일 뿐임을 왜 알지 못하지?”
무당: “체계가 아무리 커도 신명과 울림이 없으면 죽은 돌덩이일 뿐이죠.”
헤겔: “울림은 일시적이고 결국 사라지고 말 걸세”
무당: “일시적이기에 더 진실하죠. 불꽃처럼 피어나 가슴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겁니다.”
진우: “저는 체계와 울림의 불꽃이 서로 다르면서도 필요해 보입니다.”


셋은 메인 무대로 자리를 이동했다. 무대에서 단오굿이 시작되자, 북소리와 몸짓이 어울려 하늘을 흔들었다.

헤겔: “북소리도 이성의 언어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지.”
무당: “북소리는 언어 이전의 언어이니. 말 없는 말이라 해석할 수 없어요.”
헤겔: “해석 없는 것은 혼돈일 뿐!”
무당: “혼돈이 곧 생명이죠.”
진우: “저에게는 해석과 혼돈, 두 언어가 함께 들리네요.”


해가 지고 단오제의 불빛이 남대천에 비쳤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강을 가득 메웠다. 셋은 다리의 중앙에서 축제를 보고 있었다. 헤겔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며 말했다.

헤겔: “나는 오늘 체계 속에서 자유를 봤지 잘 있으시게.”
무당: “나는 울림 속에서 자유를 봤어요. 조심히 가세요.”
진우: “저는 오늘, 체계와 울림이 다르지 않음을 배웠습니다.”


사라지는 헤겔의 모습을 보고 옆의 무당을 보자, 무당은 헤겔과는 반대쪽 길로 몸을 돌렸다. 남겨진 진우에게 잠시 뒤돌아 가벼운 목례를 하고 미끄러지듯이 다리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진우는 늦은 저녁까지 천변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을 보며 생각했다.

“강릉 단오제. 헤겔은 체계를 말했고, 무당은 울림을 말했다. 나는 오늘 체계와 울림이 함께 자유의 길을 연다는 걸 알았다. 굿과 철학은 달랐지만 어차피 이 둘도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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