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히포크라테스, 허준 Hippocrates
진우는 직접 차를 몰고 경남 산청의 동의보감촌에 들어섰다. 동의보감촌은 자연휴양림 부근에 위치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자가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휴일이라 1 주차장은 가득 차서 2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원활한 관광을 위해 매표소에 있는 지도를 보았다. 동의폭포에서 출발하여 엑스포 주제관을 통과한 후 해부 동굴과 한방 테마공원을 마지막으로 하는 추천 코스가 눈이 들어왔다. 그러나 언제나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산비탈에는 약초밭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 곳곳에는 옛 한옥과 현대적인 전시관이 어우러져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쑥, 당귀, 황기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동의보감촌 입구에는 복식이 현대인이 아닌 두 인물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 마을을 있게 만든 동의보감을 집필한 조선의 의성 허준과 다른 한 사람은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였다. 진우는 익숙한 듯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진우: “이곳은 저도 처음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곳은 약초와 의학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던데... 허준 선생님께서는 잘 알고 계실 수도 있겠군요.”
허준: “저도 이곳은 처음입니다. 저는 백성을 살리고자 약을 직접 먹어보고 만든 후에 기록했죠. 병은 몸과 마음 그리고 세상 어디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임을 모두가 알게 하게 싶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나는 병을 신의 형벌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라 했소. 인간은 그 질서와 어긋나면 반드시 병이 들기 때문이지.”
진우: “몸과 자연이라... 두 분의 사상이 이곳에서 만나는군요.”
허준: “병은 기혈의 막힘에서 옵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기운도 어긋나게 되죠.”
히포크라테스: “병은 네 가지 체액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네.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조화가 깨지면 병이 되는 것이지...”
허준: “체액과 기혈, 모두 조화를 말하는 것이군요.”
히포크라테스: “그렇다네. 다만 나는 자연의 힘에 의지했을 뿐이지.”
진우: “어찌 됐든 두 분 다 조화를 이야기하시네요.”
세 사람은 현대식으로 포장된 관람로를 따라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허준: “자네는 현재 이 세상에서, 병은 어디에서 오는 것 같은가?”
진우: “음... 스트레스와 과로, 그리고 환경오염에서 많이 옵니다.”
히포크라테스: “스트레스라... 그것도 체액을 어지럽히는 원인이지.”
허준: “마음이 흔들리면 기혈도 흔들리죠. 이 마음 자체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죠.”
진우: “맞습니다. 병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히포크라테스: “그렇지... 병은 공동체의 거울이기도 하네.”
세 사람은 허기짐을 느껴 관광지 안의 휴게소로 향했다. 약초차와 약초로 만든 떡을 주문했다.
진우: “쑥차는 은은하고, 황기떡은 담백합니다.”
허준: “약과 음식은 다르지 않죠. 먹는 것이 곧 약이 된다는 것은 의사로서 확언하기는 싫어하지만 이 말만은 유일한 진리 같아요.”
히포크라테스: “나는 언제나 ‘음식이 곧 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소.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식습관이지. 사람은 먹는 대로 만들어지니...”
허준: “우리의 서로 말이 닮아 있군요.”
히포크라테스: “동서양이 달라도 치유의 근원은 같을 수밖에...”
평소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동의보감촌의 거리에 가득했다.
허준: “저 산의 약초들은 하늘과 땅이 빚은 보물이죠. 환자는 언제나 약초, 더 나아가 자연과 대화해야 하죠.”
히포크라테스: “나는 식물과 바람, 물과 흙이 인간을 고친다고 믿었소. 약초는 자연의 언어이니 인간이 귀를 기울일 수밖에...”
허준: “자연의 언어를 듣는 귀가 참된 의사의 첫걸음이죠.”
히포크라테스: “그 귀가 닫히면 의술은 오만이 된다네.”
진우: “자연을 듣는 귀... 현대 의학도 분명히 배워야겠네요.”
히포크라테스: “그렇다면... 지금 현대 사회의 의학은 자연을 잊었는가?”
진우: “많이 그렇습니다. 병원은 대부분 화학적으로 만든 약과 첨단 기계에 의존합니다.”
허준: “그것은 급한 병에는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관한 치료가 되지는 않을 걸세. 특히 마음의 병에는 무력할 텐데...”
히포크라테스: “또한 기계는 증상을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의사는 그것을 포함한 전체를 보아야 하네.”
진우: “맞습니다. 몸만 치료하고 마음은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음조차도 약으로 해결하려 하죠.”
세 사람은 엑스포 주제관을 지나 약초테마공원 입구의 벤치에 잠시 앉았다.
허준: “의사는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죠. 의술은 자비니까요.”
히포크라테스: “의사는 진리를 위해 존재해야 하네.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 의무이고, 그래야만 의사라 불릴 수 있기 때문이지...”
허준: “자비 없는 진리는 마치 차가운 진리, 거짓이라는 병이 든 상태 같이 들리네요...”
히포크라테스: “그렇지... 진리 없는 자비야 말로 미신일 뿐이네...”
허준: “자비와 진리가 합쳐져야 완전하다는 말에는 동의하나요?”
히포크라테스: “동의하고 말고... 우리의 몸은 균형을 잃으면 해로워진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진우: “결국은 자비와 진리,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하군요.”
세 사람은 약초 체험관에 들어섰다. 유난히 다른 장소에 비해 가족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들은 약초비누와 차를 만들며 웃고 있었고 부모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허준: “아이들이 자연과 만나는 순간, 이미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죠.”
히포크라테스: “아이들의 웃음은 최고의 약임이 분명하네. 병든 어른들도 저 웃음을 배워야 하지. 웃는다는 것은 치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니...”
허준: “웃음은 기혈을 열고, 숨을 고르게 하죠.”
히포크라테스: “또한 웃음은 체액의 균형을 맞추는 본능적인 반응이네.”
진우: “웃음이란 동서양 의학의 공통된 필수적인 처방임이 분명하군요!”
체험관을 나와보니 새삼 동의보감촌의 공기는 도시와 다름을 느꼈다. 경남 산청의 냄새와 약초의 냄새, 그리고 주변 산들이 동의보감촌 안으로 치유의 숨결을 몰아서 불어주는 것만 같았다.
허준: “저는 백성을 위해 동의보감을 남겼죠. 저의 일기와도 같은 책입니다. 직접 저의 몸을 통해 연구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분명한 건 저에게는 자비의 기록입니다.”
히포크라테스: “나는 세상의 모든 의사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맹세를 남겼지. 내가 쓴 '공기, 물, 흙에 관하여'나 '성스러운 병'이라는 책은 후대에 남기는 진리의 기록이네.
진우: “저는 오늘, 자비와 진리가 함께해야 치유가 완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두 인물과 헤어지고 제2주차장으로 향하는 진우의 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몸에 있는 좋지 않은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것이 충만해진 것만 같았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진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허준은 자비의 의술을 말했고, 히포크라테스는 진리의 의술을 말했다. 나는 오늘 자비와 진리가 하나의 처방임을 알았다. 아직도 몸 군데군데에 남아있는 약초의 향기와 머리에 맴도는 그들의 말들로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