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영과 진우의 만남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진우는 순영의 직장 앞에 와서 순영이 나오자마자 밥을 사주곤 했다.
순영은 퇴근시간이 가장 배가 고파 집까지 가지 않고 밥을 먹는 게 좋았다.
그들의 알콩달콩한 데이트는 사랑이라고 여기질 만 했다.
순영은 빨리 결혼하여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사모님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녀의 계획은 아주 간단했다. 올해 안에 아이를 낳는 것.
진우는 29세이고 순영은 25세니 딱 결혼하기 좋을 나이고 진우의 직장도 대기업이니 주저할 것이 없었다.
이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순영은 친절해야 했다.
이미 진우는 순영의 착한 외모에 빠져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순영은 청혼을 받기 위해서 본래의 거친 말투는 저 밑이 숨겨야 했다.
진우의 집에 인사를 간 순영은 최대한 조신했다.
순영이 진우에게 공을 들이는 동안 진우의 부모는 아들의 짝을 자신들이 구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진우는 자신이 고른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예비 시어머니는 말했다.
아가씨는 교회를 다닌다면서요?
네, 어머니. 주일 마다요.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조상님 덕에 진우가 서울대도 간 거니까요.
네… 훌륭하신 집안이에요.
진우도 그런 복을 이어가야죠.
제사를 거르면 조상님이 섭섭해하시거든요.
우리는 그런 며느리를 찾고 있어요.
.....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말 속엔 ‘우리 아들이 아깝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순영은 자존심이 상했다.
진우도 시골마을에서는 서울대에 간 수재였다.
그러나 당사자의 마음이 이미 순영에게 기운 이상 그 노력은 의미 없었다.
순영은 속으로 다짐했다.
‘결혼만 해봐라. 오늘의 수모, 반드시 갚아주겠다.’
교회를 다닌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가난 속에서 늘 참고 살아온 세월 덕분에, 순영은 원한이 쉽게 생기는 여자였다.
그러나 콩깍지 씐 진우는
그녀의 가면 속 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