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의 명과 암
새벽의 두려움을 걷어낸 자리
바다는 황홀한 첫 빛을 끌어안는다.
한라산 능선에 잠시 쉬어가던 태양은
형제섬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밤새. 지친 세상의 하소연 위로
찬란한 입김을 쏟아낸다.
새벽 4시
잠든 딸이 깰세라
혼자 조용히 호텔을 나선다.
형제섬의 촬영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
골목을 나서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길 가운데 웅크리고 앉아있다.
마음은 한없이 바쁜데
차창을 내리고 가라는 손짓에도
요지부동인 고양이
아. 못 가려나 보다
헤드라이트를 끄고 후진을 했더니
그제야 일어나서 길을 비켜준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해변가
일출을 담으려는 일념으로 나섰지만
낮과 다른 새벽의 해안도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길을 걷는 할아버지께 차 안에서 일몰 포인트를 물으니 멀리 주차장을 가리키신다.
한참을 달려
주차장을 발견하고 서둘러 주차한 후
카메라를 챙겨 바닷가 쪽으로 다가가니
덩그러니 운동화 두 짝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 새벽에 누군가 세상을... '
까만 바다는 침묵 속에 일렁이고 목뒤로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도망치듯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다시 길을 달리고 왔던 길을 돌아가고 반복을 하다 보니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새벽 운동하는 행인들에게 길을 묻고
그렇게 형제섬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여명 속에서 해를 기다린다.
해 뜰 무렵
어디에선가 나타나신 사진가 한 분!
한 달여 이 자리에서만 일출을 찍으셨단다.
드디어
한라산 능선에 빼꼼히 해가 올라오자
새벽의 방황과 두려움은 모두 날아갔다.
아. 그런데 이걸 어째!
카메라 초점이 말썽이다.
고장인가 보다.
이 한컷의 일출을 담기 위해
온 새벽을 달렸는데,
이 몇 컷의 사진
형제섬 위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는
그날 새벽의 아쉬운 기억만 떠오른다.
다시,
제때 일출을 보러 오겠다던
그 약속은 언제가 되려나?
이제, 바로 황홀한 일출을 만나러
갈 모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