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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버스 타보기

by 지구지고

바람 부는 날은 무작정 버스 타기에 좋다. 이리저리 흔들려도 늘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내 마음이 흔들릴 때 흔들리는 나무를 쫓아 어디론가 떠나 보는 것이다. 5월, 바람이 불어서인지 무작정 버스 타기를 위해 터미널로 갔다. 룽기를 무릎 위까지 동여맨 차장이 ‘할루아가트, 할루아가트’ 외치는 소리에 이끌려 어딘지도 모르는 할루아가트행 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에 탄 나는 때 묻은 버스 의자 덮개를 잡으려다 말고 손을 뺐다. 승객을 다 태우고 출발하려는지 차장은 여전히 승객 모으기에 열중이다. 차 안으로 물을 파는 장수가 와서 조그만 물병을 하나 샀다. 헐, 뚜껑이 열린 물병이다. 다른 사람을 슬쩍 보니 역시 마찬가지다. 빈 물병에 집에서 물을 담아 파는 것이었다. 물은 꼭 사서 마셔야 한다는 방글라데시 생활 수칙이 생각나 헤어져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의자 뒤 포켓에 그냥 넣었다.


1시간 30분 정도 달린 버스는 할루아가트(Haluaghat)에 도착했다. 할루아가트에서 처음 만난 것은 시장이었다. 작은 마을인 듯한 데 고기를 파는 곳과 수산물을 시장이 있었다. 다른 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건어물 가게도 있고, 옷이며 잡화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사람들이 차지한 좁은 도로는 릭샤들이 사람을 헤치고 또 툭툭 치면서 돌아다녔다. 시장을 돌아보고 나오는 중에 거리에 작은 화덕을 만들어 놓고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발길을 옮긴 곳은 대장간이었다. 등을 마주대고 두 곳의 대장간이 풍선 같은 가죽 주머니를 발로 밟으며 풀무질하면서 쇠를 달구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보고 있는데 대장장이가 물었다. 늙수그레한데 나와는 그리 많이 차이가 나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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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왔어요?”

“마이멘싱에서 왔어요.”

대답을 하고 다시 정정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마이멘싱이라는 말에 머리를 쳐들면서 물었다.

“마이멘싱, 거기서 뭐해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마이멘싱 TTC"

"……."

"지금 만들고 있는 게 뭐예요?“

“칼”


방글라데시에서 흔히 사용하는 칼은 우리 것과 아주 다르다. 칼을 들고 음식물을 써는 것이 아니라 칼을 고정해 놓고 음식물을 움직여 써는 방식이다. 칼의 형태는 낫처럼 휘었다. 고정할 수 있도록 다리가 달렸다. 큰 것을 썰 때는 칼의 다리를 발로 밟아 고정하고 썬다. 대장장이는 쇠에 불을 먹이고 두드리기를 반복하면서 형태를 갖춰갔다.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대장장이는 외국인을 처음 본 듯 여러 가지를 물었다. 종교가 무엇인지? 한국은 어디에 있는지? 그러다 커피를 마겠냐고 물었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겉이 지저분해진 플라스틱 물병에서 물을 따라 까맣게 그을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커피를 타 주었다. 물은 잘 마시라고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커피를 받아 들었다. 커피보다 설탕이 더 많이 들어간 듯 달디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대장장이는 한국에도 있는 도끼며, 낫을 만들고 있었고, 손님들이 주문하거나, 고치러 오는 물건들을 수선해 주었다. 규모는 아주 작아 쪼그리고 앉아서 손을 뻗으면 뭐든 다 닿을 수 있는 규모였다. 두 평 남짓한 장터에 동종 점포가 4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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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본돌’을 만났다. 25살이다.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다카에서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잠깐 집에 온 틈을 타서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65세다. 내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와 인도 이야기를 하다가 국경과 5㎞ 떨어졌다고 해 가고 싶다고 했더니 선뜻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국경을 향했다. 오토를 흥정해서 타고 20여 분 달리니 인도 국경 표지판이 나왔다. 거기서 내려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검문소로 들어가서 국경까지만 갔다 와도 되냐고 물으니, 처음엔 망설이다가 한국에서 왔는데 국경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하고 허락을 받았다. 국경은 마침 도로포장 공사 중이었는데 사람의 손으로 자갈을 나르고 평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국경에 가까이 가니 방글라데시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야트막한 산에 나무가 울창한 곳부터가 인도였다. 국경은 철조망으로 양국을 확실하게 나누었다. 철조망 사이엔 국경 검문소가 있어 이를 통해 인근 마을끼리는 왕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와의 국경 근처는 인도에서 넘어오는 석탄 차량이 오갔고, 자갈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이 국경을 오가며 방글라데시 국경 근처에 하차했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국경을 보는 건 처음이다. 한국의 국경은 어떤가 생각했다. 휴전선으로 막혀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한 곳, 언젠가는 이처럼 손쉽게 다닐 수 있어 그곳을 여행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보】

할루아가트는 마이멘싱주의 도시로 마이멘싱에서 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인도와 국경을 이루고 있어 인도의 자갈이나 석탄이 이곳을 통해 수입된다. 전통적인 농업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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