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면 됐어요.”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 아내를 손짓으로 멈추게 했다. 식탁에 놓인 참치김치찌개, 파를 듬뿍 넣었다. 보기만 해도 얼큰하다. 잠시 아파트 너머 시내의 불빛을 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밝았다. 추위를 가늠하기엔 불빛만으로는 부족했다. 창문을 여니 찬바람이 얼굴에 확 들이닥쳤다. ‘어휴! 추워’하고 돌아서 아침상을 받았다. 언제 먹어볼지 모를 김치찌개니 메뉴 선택도 잘 됐다.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새벽 기온은 영하 6℃였다. ‘이제 시작이네.’하고 아내에게 미안한 말 한마디 툭 던졌다. 미안함을 감춰보려 했지만 감춰지지 않았다. 머쓱한 얼굴로 가자는 신호를 했다. 아내의 차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하면서 뭔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드라마에선 어떻게 말했지,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매일 연락할게.”
05시 10분.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엔 나를 포함해서 중년의 부부, 젊은 사람 5명이 전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인지 타자마자 모두 잠을 청했다. 나도 잠을 청해 보지만,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눈은 감기지 않았다. 잠 대신 상상이 찾아왔다. 모르는 것은 설렘이다. 어둠을 뚫고 공항 가는 길은 상상의 길이었다. 어떤 여정이 기다릴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설렘,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는 낯섦이 그곳에 있다.
“이제 정말 출발이네.”
버스가 출발하고 어둠에 싸였던 사물들이 점점 그 모습을 내보였다. 어둠의 자리를 빛이 차지할 때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만남이다. 헤어짐이다. 낯섦을 마주할, 익숙함을 떠나보내야 하는 장소다. 코이카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다가가 낯선 만남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최선묵입니다. 반갑습니다.”
어색하게 서로를 소개했다. 가족과 같이 온 분들은 그분들만의 숭고한 헤어짐 의식을 치렀다. 가족들이 떠나고 우리만 남은 잠깐의 시간. ‘누가 먼저 말을 하지’하며 어색함이 감돌았으나 ‘우선 짐을 부치죠’라는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같은 조끼를 입었다는 한 가지 동일성으로 인해 금방 친해졌다.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항상 곁에 있었던 것 같은 푸근함을 느껴졌다. 이분들이 나의 동료요, 나를 품어줄 짝이다. 출국 수속은 의뢰로 간단히 이뤄졌다, 짐을 부치고 바로 입국장을 향하며, 기다려주고, 짐을 옮겨주며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이분들은 대체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생각해 봤다. 각자가 다 다른 모양의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고, 다른 배역으로 세상이라는 무대에 올랐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난생처음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터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또다시 코이카라는 새로운 무대에 섰을 것이다. 밑그림을 그리지도 못한 채 무대에서 직접 그려보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고 새로움을 알아가는 것,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하지만 여행자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가이드북을 통해 만나 본 여행지가 진짜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온 분들은 장자가 <소요유>에서 대붕과 참새를 빗댄 것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붕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선 커다란 바람이 필요하지만 한 번 날아오르면 구만리를 오른다. 이를 보고 참새는 ‘뭣 하러 그런 수고를 하지?’라며 비웃는다. 나뭇가지 사이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한시도 몸을 가만 놔두는 일 없이 오두방정을 떨며 자신을 즐기고 만족한다.」
참새처럼 자신의 세계에 갇혀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으며 사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대붕이 날아오른 것처럼 머나먼 이국의 낯섦을 택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기억을 잊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각자가 목표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꿈꾸고 가꿔 왔던 것들을 잊지 않고 연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난 모든 ‘떠남’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수없이 떠나 본 사람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도 떠난다는 것은 항상 첫 경험과 같다. 그곳엔 늘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