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증명을 사랑으로 하려 했던 나 - 불안형 애착의 그림자
사랑을 시작하면, 어느새 모든 것이 그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 사람의 메시지 한 줄로 시작됐고, 메시지 한 개나 전화 한 통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약속이 생기면 내 일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정을 먼저 확인했다.
친구과의 약속도 미루곤 했고 꼭 해야 하는 일들은 했지만
그 일을 하는 중에도 일을 마치고 나서도, 연락부터 확인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곤 했다.
내 일상에선 그 사람이 우선이었다.
이렇게까지 몰입하는 나를 보며
주변에서 "넌 너무 사랑에 목매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말이 아파도 나는 이게 내 방식이라고 하며 부정했다.
애초에 사랑이란 그런 거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그만큼 사랑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작이 쉬운 사람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직업도 모두 무난한 편이었고, 밝고 말이 잘 통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래서인지 소개팅도 자주 들어왔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감정을 나누는 것도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연애는 곧잘 시작되곤 했다.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된 경우가 많았지만
이상하게 연애가 지속될수록 내가 더 많이 좋아하고 더 많이 노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상대가 나의 관심과 애정 속을 점점 당연하게 생각하고 점차 무심해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노력했다. 그 사람의 기분에 더 신경 쓰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나부터 조심했다.
언제부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늘 '편한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나는 '불안한 연애' 속에 있었다.
나는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종종 웃으면서 투정을 부리게 됐고, 그럴 때마다 점점 더 불안해져가곤 했다.
그 투정과 보챔 속에 나와 상대는 모두 점점 지쳐갔고
상대든 나든 그 지침을 못 버티고 이별을 통보하곤 했다.
이별은 매번 힘들었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떻게든 일상을 견디지만, 밤이 되면 공허함이 밀려왔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핸드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 울기도 했고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참아볼 걸' 같은 생각에 후회하며 잠 못 드는 밤도 많았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래된 것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무서웠고, 그래서 이별 후에는 더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그게 공허함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갖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즉,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서.
그게 더 위험한 감정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사랑은 늘 나의 결핍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내 존재를 확인시켜 줬다.
그래서일까? 나는 관계가 끝나면 마치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붕 떠버리는 느낌이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던 그 시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나'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애착 패턴을 '불안형 애착(Anxious Attachment)'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 안정적인 돌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거나,
감정이 일관되지 않은 양육자를 경험한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관심과 애정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관계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집착하거나 매달리게 된다.
연애에서 작은 거리감에도 불안을 크게 느끼고, 확인과 보장을 계속해서 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러한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관계 중심적 자기정체성(Relational Self-Identity)'을 형성하게 된다.
즉, '누군가의 애인인 나',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나'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관계가 흔들리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공허함과 무력감을 더 크게 경험하게 된다.
이는 뇌의 '애착 시스템이 과활성(Hyperactivation of the Attachment System)'된 상태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신호에 과잉 반응하고,
그 사랑이 사라질까 봐 끊임없이 경계하는 신경 회로가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현상이다.
사랑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애착'을 쥐고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구조다.
돌이켜보면, 그 사랑들은 나를 전부 쓰게 만들었고
결국 나를 가장 고되게 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