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주면, 사랑도 될 줄 알았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집착 - 과기능과 관계의 피로

by 서하

나는 사랑을 하면 잘하고 싶었다.

'잘한다'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주고 불편함 없이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믿었다.


사랑은 내가 전력을 다해 해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더 노력하면, 이 관계와 사랑도 더 깊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의 말투, 스케줄, 취향 등을 빠르게 기억했고

기념일을 챙기고, 작은 선물이나 메시지 한 줄도 정성껏 준비했다.

상대가 원할 때 만나고, 상대가 바라는 대화를 주로 했고, 문제가 생기면 먼저 사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상대의 감정'을 내 감정 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게 됐다.

연락이 줄어들면 이유를 분석했고, 대화가 줄어들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되돌아봤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미안해'라고 말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주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줄어갔다.

상대는 점점 편해졌고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 불균형을 바로잡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사랑을 유지하는 책임은 나에게만 있다는 듯.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늘 이런 감정도 함께 있었다.

'나는 이렇게 까지 했는데 왜 나를 더 좋아해 주지 않지?'

애써 잘해놓고 억울함을 느끼고, 그 억울함은 어느 순간 투정이 되었다.

가끔은 울면서 따지듯 말했고, 감정이 폭발한 뒤에는 '이러다 정말 끝이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 좀 붙잡아줘'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과기능(functional overreach)'이라고 부른다.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한다.
갈등 상황에서도 '내가 잘하면 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상대의 무관심이나 회피를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희생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패턴을 보인다.
또한, 이는 '구원자 콤플렉스(Savior Complex)'와도 연결된다.
내가 이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상대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타인의 감정을 관리함으로써 내 불안을 조절하려는 무의식적 전략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경계(self-boundary)'는 점점 흐려지고,
'나는 상대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되며, 점점 더 '기능하는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런 관계는 서로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계속해서 소진되는 구조가 된다.


연애에서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관계의 주도권을 잃는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싫지 않았다.

그만큼 더 사랑할 수 있고, 더 진심일 수 있으니까.

내가 그만큼 쏟아부으면 그 사람이 나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점점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사랑을 주는 것과 나를 잃어가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나는 그 차이를 오랫동안 알지 못했고, 그만큼 오랫동안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사랑을 퍼주는 게 나의 방식이라고 믿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을 감추기 위한 애씀이었다.

나는 결국 나를 잃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을 잘하고 싶었던 나는, 점점 '잘해주는 사람'이 아닌 '더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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