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어서, 잘해주고 싶었던 마음

사랑받기 위해 착해진 나 - 조건적 자존감과 타자중심 연애의 늪

by 서하

나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다.

조용히 기다리고, 말 잘 듣고, 어른들이 칭찬하는 행동을 먼저 찾아서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자라면서, 나는 '사랑받는 법' 보다는 '사랑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먼저 배운 것 같다.


연애를 시작하면, 나는 그 사람의 하루를 묻고 챙기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귀 기울였다.

작은 취향 하나까지도 기억하려 애썼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고치려 노력했다.

때로는 내 스타일이나 생활 리듬까지 바꿔가면서 맞추기도 했다.

그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면 나도 편안하다고 느꼈고 보다 안심이 됐다.

마치 그 사람의 평온이 곧 내 존재의 가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줄수록 불안은 점점 더 자라났다.

'나는 이렇게 까지 하는데, 너는 왜?'라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스스로를 더 다그쳤다.

뭔가 부족한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나를 점점 더 지치게 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억울함이 감정으로 터져 나왔다.

울면서 화를 내기도 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사실 상대는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나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억지였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 순간엔 멈추지 못했다.

그러고 나선 또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감정을 소모하고 나면 늘 스스로가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졌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비참한 마음이 들어서,

또는 더 상처받기 전에 끝내고 싶어서.

하지만, 그렇게 등을 돌리고 나서도 결국엔 내가 늘 더 많이 울었다.


'자기애(self-esteem)'와 애착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고,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내가 더 잘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어'라는 전제가 작동한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자기중심의 연애가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맞춰지는 '타자 중심 연애'를 반복하게 만든다.
이는 '조건적 자존감(Conditional self-worth)'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나의 가치는 '사랑받고 있을 때', '필요한 존재일 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줄 때'에만 유효하다고 믿는 심리 상태다.
이런 자존감은 외부에 의해 쉽게 무너지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널뛰듯 바뀌게 된다.
또한, 이런 패턴은 종종 '과잉적 공감(over-empathy)'과 연결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너무 잘 읽고, 그 감정을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오해하면서,
자신의 욕구나 불편함은 억누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 소외(self-alienation)'가 일어난다.
결국, 나를 사랑받게 하기 위한 연애는 나를 잃어가게 만드는 연애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어쩌면 사랑했고, 늘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야'와 같은 믿음이 연애 속에 교묘히 숨어 있었다.


진심을 다해 애썼지만, 그 진심 속에 나는 없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감정의 끝까지 밀어붙이고 나면 결국 무너지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그러면서, 점점 깨달았다.

사랑받기 위해 무조건 잘하려는 마음은 결국 내 결핍에서 비롯되었고

진짜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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