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늘 나 혼자만 애쓰는 쪽이 될까 - 감정 역전과 불균형 루프의 함정
처음엔 고백을 받은 입장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거나, 혹은 우연히 시작된 연인들. 내가 먼저 마음을 표현한 것은 극히 일부였다.
물론 적당한 리액션과 호감의 표시는 했지만, 먼저 다정하게 다가와 주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해 준 쪽은 대부분 상대였다.
처음엔 오히려 내 마음이 한걸음 뒤에 있었고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바뀌어갔다.
언제부터인지 더 많이 좋아하고, 더 불안해하고, 더 기대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연락이 늦어질 때마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고, 이전에는 없던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쩌면 그 사람은 예전 그대로였는데 나만 달라진 듯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잘해주고, 더 다가가고, 더 노력했다.
한 번은 어느 날, 그 사람의 말투가 전보다 짧아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 요즘 조금 바빠"라는 말속에 진짜 의미가 뭘까 수십 번 되뇌고 되뇌며 나를 괴롭혔다.
그날 나는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자고, 이전에 주고받은 톡을 한 줄씩 다시 읽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이미 나에게서 멀어진 걸까, 아니면 내가 그냥 예민한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나는 다음 날 아침, 다시 밝은 척 '굿모닝!' 메시지를 보냈다. 읽씹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이런 식의 끝도 없는 생각과 애씀의 반복 속에서 지쳐갔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리곤 했다.
"나한테 관심 있는 거 맞아?",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왜 이렇게 무심해?"라고 울면서 묻고,
자존심을 꺾어 버리며 감정을 쏟아냈다.
그 순간들은 다정함이 아니라 절박함에 가까웠다.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서, 나를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울고 투정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에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적도 있다.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끊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를 끊고 나면 그다음엔 더 깊은 울음과 슬픔이 찾아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역전 현상(Emotional Reversal)'이라고 부른다.
관계 초기엔 더 매력적인 쪽이 주도권을 쥐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점점 더 상대에게 의존하게 되고,
애정의 중심이 뒤집히는 현상을 겪는다.
상대는 편해지고, 나는 '불안해지는' 구조
그래서 처음엔 사랑받다가도, 나중엔 사랑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투사(projection)'와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과도 연결된다.
상대의 작은 변화나 말투에 의미를 부여하고,
"저 사람은 이제 날 안 좋아해"라는 내 불안을 투사하게 되며, 그에 부합하는 단서들만 자꾸 수집하게 된다.
그 결과, 애정의 온도 차는 더 크게 느껴지고, 나 혼자만 애쓰는 듯한 느낌이 심화된다.
또한, 감정 역전이 발생하면, '불균형 애착 루프(Imbalanced Attachment Loop)'에 빠지기 쉽다.
이 루프는
"상대의 관심이 줄어듦 → 내 불안 증가 → 애정 표현 과잉 → 상대의 거리두기 → 나의 감정 폭발"
이라는 패턴을 반복하게 만든다.
나는 왜 늘 더 많이 좋아하게 됐을까
처음부터 나는 사랑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면, 언제든 상대가 나를 떠나갈 것 같은 불안이 먼저 찾아왔고
그걸 막기 위해 더 주고 더 애쓰는 방식으로 관계를 붙잡았던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랑받는 나'보다는 '사랑하는 나'일 때 더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내가 주도권을 갖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나'를 믿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받아도 된다는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이 주고 더 크게 흔들렸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더 좋아해서 아팠던 게 아니라,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사랑받아도 된다는 믿음이 없어서 아팠던 거라는 걸
그리고 지금은 천천히 '덜 불안한 사랑'을 꿈꿔보려 한다.
이제는 어쩌면 '서로를 평온하게 좋아할 수 있는 관계'도 존재한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믿음에서, 다시 천천히 걸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