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 퍼주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나를 지키는 거리 - 경계를 배우는 사랑

by 서하

한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다 주면, 그 사람도 언젠간 느낄 거야.'

내 마음을, 내 노력의 깊이를, 이 사랑의 진심을.


그래서 나는 참 많이 줬다.

상대의 스케줄을 먼저 배려했고, 감정이 상할까 조심했고,

가끔은 나의 불편함이나 아픔도 아무렇지 않은 척 덮어두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편하면, 나도 괜찮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나의 연애 신념이 되었다.


그렇게 다 퍼주고 나면, 내 안엔 자주 '텅 빈 느낌'이 남았다.

그 사람은 고마워했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내 감정은 점점 그 사람의 기분 뒤에 밀려났다.

가끔은 불만이 생겼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말하면 불편해질 거야', '나만 너무 예민한가?'

그런 생각들이 내 감정을 눌렀고, 그렇게 계속 참다 보면 결국 나만 화나 있었고, 나만 외로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사랑을 '주는 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계 상실(Borderline Blurring)'이라고 부른다.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관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지워가며 타인에게 맞춘다.
이로 인해 생기는 불균형은 '희생 → 기대 → 실망 → 억울함'의 반복 사이클을 낳고,
결국 자신도, 상대도 지치게 만든다.
관계는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가까워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다 퍼줘야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같이 나누는 것이어야 했다.

내가 주는 만큼 돌려받고 싶다는 마음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불편한 게 있다면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런 사랑을, 그런 나를 선택하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도

"나는 이렇게 사랑해"만 말하지 않을 거다.

"나는 이런 경계를 갖고 있고, 이런 부분에서는 나를 먼저 돌볼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서로를 위한 다정한 선이 있을 때 더 오래간다.

그 선을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한 내 경계 찾기]


불편할 때 말할 수 있는가?
: 침묵하기 전에 '표현 가능한 언어'로 바꿔보자. ("그 말에 상처받았어", "그런 상황이 힘들어" 등)

하루 중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는가?
: 연애 중에도 나만의 루틴을 무너뜨리지 않기 (운동, 산책, 독서, 창작 등 30분 이상)

요구와 부탁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는가?
: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감정인가, 상대가 알아야 할 감정인가?' 구분해보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한 적 있는가?
: 작게라도 'No'를 말해본 경험을 기록하기 (피곤한 날 약속 미루기, 기분 상한 일 직접 말하기 등)

'내 감정의 기준'은 누구인가?
: 타인의 감정보다 먼저 내 기분에 귀 기울이기 ('나는 이 상황이 어떤가?', '내 기분은 지금 어떤가?' 등)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