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묻진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부모님의 영향으로(지금 생각해 보면 본질적인 문제는 여기인 듯) 명작이나 동화, 소설 등을 읽었던 것 같은데
중학교로 옮겨서는 다수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풀하우스, 베르사이유의 장미, 아기와 나, 같은 만화책을 즐겨 보았다. 그 시절 만화를 빌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고 안식처였던 기억이 난다.(부모님의 잔소리는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수능이라는
인생 첫 난제를 풀기 위해 이것저것 접하다 보니
당시 나에게 글이라는 건 그저 문제를 맞히기 위한 텍스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점수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주던 존재였다. (그렇다고 수능 공부를 또 엄청 코피 나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며 책에서 아주 손을 놓은 것도 아니었다.
간간히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실화 바탕의 영화를 보고 오는 날이면
꼭 구매해서 읽어보는 정도로 지내다
또 데면데면거리길 몇 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이 오늘인지,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인간의 본능에 충실히 집중하며
쳇바퀴 안에서 돌돌돌 돌아가는 다람쥐와 같은 인생을 살기 딱 일 년, 아이가 돌이 되던 날.
한 가지 스스로 약속을 하였다.
아이에게 매일 자기 전 책을 읽어주겠다고.
이후 아이가 6살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을까,
스스로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잠자리 독서를 그만두었다.(그동안 못 읽어준 날은 거의 다섯 손가락 안이었다. 나의 첫 큰 업적이었다 ㅎㅎㅎ)
나의 잠자리 독서는 끝이 났지만
아이의 습관은 계속 이어졌다.(작전성공의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엄마인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이보다 못한 나의 비루한 모습이란.
손바닥만 한 기계만 쳐다보며
아이에겐 뉴스 본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지만 결코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나는
또다시 스스로 결심하였다.
읽기 싫으면 읽는 척 흉내라도 내자고.
그 길로 사 온 책을 일부러 소파 옆에 두고 아이가 책을 읽을 때 난 정말로 읽는 척했다.
아이 낳고 몇 년을 그림책, 동화만 읽다 오랜만에 어른 소설이라니. 크기도 작은 빽빽한 글자에 그림 하나 없다니. 당최 집중이 안되어 솔직히 조는 날도 있었다.(아이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나도 책을 즐기게 되었다.(이건 아이의 입장에서 작전성공인 듯)
아이의 일과가 일찍 끝나는 날이면
서점에 가서 각자의 코너에서 책을 고른 뒤,
만나 서로 무슨 책을 선택했는지 살피는 재미도 생겼고, 아이가 나의 책을 궁금해하며 기웃기웃 거릴 때마다 스스로 조금 뿌듯함마저 감돈다.
아이가 10살이 된 지금,
중간중간 만화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시기도 있지만(나쁜 건 아니지만 살짝 걱정이.. 하지만 침 튀기며 결사 반대하는 일은 없었다. 나의 과거 경험이 속삭였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함께 하며
작가라는 꿈을 가진 그녀가
책과 함께 좋은 여정을 이어나가길
혼자 마음속으로 기다려본다.
또한,
나의 부끄러운 이 독백이 흘러 흘러
그녀에게 닿지 않길 바라본다.
(절대 비밀이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