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
'니클라스 루만'은 19927년 태생으로 독일의 사회학자이다.
여러 사회학 이론들을 제창해 냈으며
사회 체계 이론과 소통 그리고 위험과 신뢰 등등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현대 중요 사회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출처] 나무위키
그의 이론은 '오토포이에시스'라는 '자기 생산'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생산적 사회체계 이론'이 보는 사회는
'전체'보다 더 큰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사회는 이런 <부분>들로 이뤄진 체계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런 체계들은 오직 '소통'을 통하여서만 다른 체계들과 접근 가능하다.
즉, 전통적인 사회이론처럼 사회를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체계와 체계가 주고받는 <소통>이 중심인 이론이다.
[출처] 나무위키 -니클라스 루만-
곧
<인간>이 존재해서 사회가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했기 때문에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포이에시스 poiesys
<포이에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을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으로 분류할 때에 사용한 용어이다.
넓게는 대상의 법칙을 알고 그것에 따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의미하나
좁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참되다고 느낀 세계를 표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출처] 국어사전
이것을 '커뮤니케이션'과 연결하여 설명하면
A가 B에게 C를 말하면서 D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C를 말하면서 B가 하는 말과 행동, 몸짓을 보면서
D를 할 수도 있고, E를 할 수도 있고, F를 할 수도 있고 무척 다양하다.
이때 B의 반응을 보고 A는 '포이에시스'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곧 스스로 새로운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루만'은 이것을 '오토포이에시스'(자기 생산)라고 부른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자기 생산(오토포이에시스)'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토포이에시스 autopoiesys
오토포이에시스 autopoiesys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제조하거나 재생산한다는 것으로
자기 생산, 자기 제작, 자기 창출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생물학 용어인데 루만이 인간 사회의 한 특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언어의 차이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오토포이에시스>를 우리말로 편집 또는 창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편집 또는 창조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무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없다.
기존에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보고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고
자연을 보고 어떤 느낌이 떠올라 쓰는 것이고
누군가의 책을 보고 어떤 다른 생각이 떠올라 쓰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은 생각해 낼 수 없다.
[출처] 에디톨로지 -김정운, 21세기북스-
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김정운 교수는
생각의 본질이 어디선가 본 것을 떠올리는 것이라면
창의적 사고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데서 시작한다.
[출처] 에디톨로지 -김정운, 21세기북스-
라면서 사람은 자기만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만의 시각이 바로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ys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ys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정이 없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계와의 소통이 편집을 만들고 이러한 편집이 창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꼭 창조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저 사람이 생활하는 것도 누군가와의 상호 소통이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 없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가 발달하게 되었고
나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언어가 없어서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들은 동물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언어가 이렇게 발달했음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대립이 발생하는데
언어가 없다면 아니 동물과 같은 울부짖음에 가까운 언어라면 얼마나 많은 대립이 생기겠는가.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우리 인간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고
그래서 우리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조율하며
서로와 서로의 대립을 최소화하도록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연예계는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고 존중해 준다. 적어도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그렇다.
그리고 자신을 낮춘다. 말도 아주 부드럽고 최대한 의젓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또한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주 흐뭇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정치계는 그렇지 않다. 위에서 말한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도 말이다.
이 차이점이 커뮤니케이션을 막는 장벽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자세가 있기에
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사회가 유지되고
'오토포이에시스'(편집을 통한 창조)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