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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울의 파도

침몰하지 않기 위한 발악

by 김바다

파도에 잠긴 것 같은 나날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의사 선생님은 내게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학교에 갈 수 없을 것이고, 학교에 가지 못하면 지금까지 내가 지켜 온 내 '정상적인 학교 생활'은 어떻게 될지 뻔했다. 밑도 끝도 없이 불안해졌다. 조와 울의 파고는 너무 높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바다라는 닉네임을 붙인 주제에 그 파도 앞에서 한없이 작았다. 고등학교 3학년의 6월이었다.

학교를 오래 쉬는 대신 학교에 등교하는 것만 목표로 삼았다. 학교에 가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따로 떨어진 섬이 된 것 같았다. 아무때나 잤고 아무때나 일어나서 아이패드로 딴짓을 했다. 이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열심히 할 마음이 드는 건 또 아니었다. 이동 수업은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었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출결에 오점이 남는 게 더 싫었다. 체육 수업에 체육복이 아니라 교복을 입고 갔다. 반항은 아니었고 그저 체육복을 갈아입을 힘이 없었을 뿐이었다.

우울했다. 몹시 우울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다. 너무 우울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고 발을 구르며 내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서 별것도 아닌 이유로 화를 냈다. 가령 졸린데 잠이 오지 않으면 화가 나서 아무 잘못도 없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다 내가 내 화를 못 이겨 결국은 울곤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옥상은 너무 높아서 무서웠고 학교 옥상은 비교적 높이가 낮아서 실천하기 용이할 것 같았다. 학교에 갈 때마다 자살 충동이 심해졌다. 결국 내 세상의 전부였던 학교를 쉬기로 했다. 2년 하고도 반을 버텼는데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그렇다고 꾸역꾸역 등교하기에는 내가 너무 지친 상태였다. 악을 쓰며 울었다. 세상이 너무 미웠다. 왜 내게 이렇게 가혹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원은 하기 싫었다. 한 번 입원하면 다시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삶에, 그들의 범주에 속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입원하지 않으면 그 대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더는 아무것도 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글이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전부 썼다. 하지만 그로 인해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글을 썼다. 글이 좋았으니까. 유일하게 질리지 않은 행위였으므로.


주말에는 학원에 갔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우울하기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수업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냥 학원에서 글을 썼다. 물론 글을 쓰다가도 불쑥 자살 충동이 들었다. 병원에서 준 약을 먹었다. 약을 먹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분명 나는 나인데 사실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아서 일부러 슬픈 동영상을 봤다. 적어도 그러면 펑펑 울 수 있었다.


학교 조별 과제 단체 채팅방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역할을 나눠 일을 진행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주 큰 짐이자 민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그건 그냥 나의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내가 발붙일 공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계속 자고만 싶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났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엉망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쯤 나아지는 건지,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가끔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을수록 이후에 찾아올 우울이 두려웠다. 내 예상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듯 경조증처럼 느껴지는 1시간을 넘기면 11시간의 우울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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