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기복이라는 이름의 악어
고등학교에 합격한 뒤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1학년의 겨울, 내가 ADHD임을 믿지 않는 부모님을 끌고 정신과에 간 후에는 예상했던 대로 ADHD 진단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한 감정 기복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우울감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던 것도 같다. 나는 내 인생에서 ADHD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기라도 했는지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때는 ADHD가 아주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매번 과제를 늦게 제출하고 뒤늦게 선생님을 찾아뵈어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다. 양해를 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과제를 제출할 힘은 있었던 것이다.
3학년으로 접어들며 큰 스트레스가 문을 두드렸다. 중간고사를 망쳤다. 5월의 일기는 우울하다는 말로 점철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평가원 6월 모의고사 국어 시간에 잤다. 그래, 쿨쿨 잤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종이 친 뒤였고 나는 마킹조차 못한 채로 국어를 그렇게 마쳤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뭔지 확연하게 체감했다.
중간고사도 망쳤고 6모도 그렇게 흘려 보냈다.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게 점점 우울해졌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더 이상해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의 문제가 ADHD 외에 다른 것도 있는 것 같다고 결정적으로 의심하게 된 것은 우울감에 있지 않았다.
에너지가 갑자기 너무 넘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준비했다. 혼자 웹소설을 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무료 연재까지 한달음에 완성했다.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지금은 소설을 쓸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의 일기에는 왜 내가 지금 당장 소설을 쓰면 안 되는지 분통을 터뜨리는 내용이 종종 나타난다. 당시의 일기를 한 편 공개하려고 한다.
왜 내가 글을 쓰면 안 되는 걸까?
왜?
나는 글이 쓰고 싶은데.
왜 꼭 지금은 안 될까?
왜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할까?
글을 먼저 쓰고 공부를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왜?
글 쓰고 싶다!
글을 쓸 거라고.
나는 글을 쓸 거라고.
글을 쓸 거야.
왜 안 돼?
부모님도 의사쌤도 올해는 안 된대.
올해만 지나고 하래.
왜?
올해는 왜 안 되는데?
글은 원래 써질 때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글이 써지는데 지금 써야 하는 거 아냐?
공부는 안 되고 글은 잘 되는데 내가 잘 되는 걸 해야 행복한 거 아니야?
글을 쓰고 싶어.
5월 말의 일기다. 지금 다시 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버리지 못했으며 에세이를 쓰고 있으므로 과거의 나를 어리석다고 질책할 명분은 없다. 문제는 저렇게 열정이 넘쳤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것이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5월의 일기는 우울하다는 말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런 우울의 늪에 나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감정 기복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