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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박사의 고민

척척박사도 어려운 일이 있다

by 김바다

나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척척박사라고 부르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괜찮은 척의 달인인 척척박사도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척’이라는 건 본디 체력과 노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특히 감정 기복이 심해진 이후로는 에너지가 바닥에 가까워서 괜찮은 척을 하기가 어렵다.


척척박사인 나에게도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하루가 있다. 딱히 재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가 그렇다. 이런 하루는 내게 고민을 안겨주고 떠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럴 때는 스스로가 척척박사는 커녕 척척석사도 못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나의 고민은 글에 있다. 내가 쓴 글들이 너무 마음에 들다가도 뒤돌면 갑자기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또 우울해졌고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질린 건 아니었기에 또 다시 글을 썼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 글에 대해 칭찬이라도 하면 두려워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문득 MBTI 질문 중 하나가 떠올랐다.


‘상대방이 나를 높게 평가하면 나중에 상대방이 실망하게 될까 걱정하곤 한다.’


원래는 저 질문에 ‘매우 아니다’ 혹은 ‘아니다‘를 선택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의 자유라고 생각했으니까. 기대도 실망도 그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용기를 내어 척척박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을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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