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이야기
더위에는 장사 없다. 30년 전, 한 여름 돌아가는 선풍기에 머리가 아팠다. 인위적인 바람을 대신하여 부채를 손에 쥔 채 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얼음 한 줌을 입 속에 털어 넣은 뒤 잠을 청했다. 에어컨이 없던 집에서 지내왔고 그때는 지금처럼 어마무시하게 덥지 않았다.
결혼 삼 년 차까지도 에어컨이 없었다. 아파트 11층, 거실 베란다 문을 열고 그 반대편 주방 창을 열면 맞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인공적인 에어컨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이 주는 바람과 전깃줄이 달린 선풍기 이거면 충분했다. 하지만 8월 말에 둘째가 태어나고 이듬해 여름날이 되어 에어컨을 샀다. 내 아이가 땀 흘리며 칭얼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고, 하루 종일 답답한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더울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인에 비해 체온조절 능력이 약한 아이들과 함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2025년 8월 거실, 폭염 속 에어컨과 선풍기는 오늘도 가동 중이다. 웬만하면 여름이니 더울 수밖에 없는 거라 견디고,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니 더위와 맞서고 싶지만 네 식구가 모여 있는 거실에서 서로서로 불쾌지수가 오르기 전 시원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실은 가족을 하나로 만드는 공간이다. 무더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우리에게 에어컨은 상쾌한 바람을 선물해 주고 함께 시원함을 누린다. 그뿐인가, 매일 앉아서 밥을 먹고 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즐기는 식탁에서도 하나가 된다. TV 역시 같이 보면서 하하 호호하는 시간도 꽤 있으니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다.
육아 일 년 차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거실생활을 하며 밀착육아를 했다. 공동주택의 층간소음은 이웃 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 거실에 두툼한 접이식 매트 두 개와 적당한 두께의 폭신한 매트 하나 총 세 개를 깔았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배밀이를 하고 팔다리를 사용해서 기어 다니고, 스스로 앉았다가 소파를 잡고 몸을 일으켰고 한 걸음씩 뒤뚱거리고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떼었다.
아이들의 꼬꼬마 시절에 우리들의 거실은 놀이터였다. 다양한 장난감놀이, 소꿉놀이, 책놀이, 미술놀이 등등 눈뜨면 거실에 모여서 같이 놀았다.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면 엄마의 청소 시간은 언제나처럼 찾아왔고 활기찬 놀이터는 고요해진다. 말끔히 정리를 마치고 나서 베란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채광을 인테리어 삼아 음악과 함께 커피 한잔의 여유는 이내 거실을 홈카페로 변신시켰다.
거실에 있던 낡은 소파를 작년에 버렸다. 벼리(반려견)가 소파다리를 물어뜯기도 했고 앉는 자리가 많이 해졌고 가족들이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소파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만 매번 나를 포함한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누워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세상 밖 풍경은 변하고, 우리 집 거실의 모습도 변화해 간다. 지금의 거실은 꼬꼬마 아이들이었던 그때보단 많이 여유로워졌다. 소파가 있던 자리에 식탁을 옮기고 딸내미 방에 있던 키 낮은 책장을 그 옆에 두었다. 식탁 반대편에는 13년 된 TV와 티브이장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리고 5년 전 벼리를 키우게 되면서 구입한 공기청정기는 열일 중이고 벼리의 커다란 방석과 장난감은 바닥에, 벼리의 관절 보호 차원으로 예전부터 써온 폭신한 매트는 계속 거실바닥에 깔려있다. 프랭키가 그려진 매트는 다소 알록달록한 느낌이 들어 그 위에 카펫을 덮어 보이지 않게 했다.
거실에 필요한 커다란 물건 이외에 자잘한 건 두지 않았다. 특히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는 일은 하지 않으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거실바닥은 그냥 바닥일 뿐, 어떠한 것도 넣을 수 없는 평면이기 때문에 물건이 밖으로 나와 있다면 먼지가 쌓이고 지저분해 보일 수밖에 없다. 대신 책장과 티브이장 위에는 작은 물건들이 있다. 탁상용 가족사진 액자, 온습도계, 아이들이 만든 작은 작품, 지구본 정도가 자리에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여전히 우리는 거실에 모인다. 초등학생, 곧 중학생이 되는 딸내미는 자기 방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있지만 자꾸 부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실은 공허해지겠지? 그렇기에 더 함께 하고 싶은 게 나,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거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맛있는 밥도 디저트도 함께 먹고, 요즘의 관심사나 고민거리에 대해서 주절주절 나누기도 하며, 카펫 위에서 뒹굴거리며 영화도 보고 싶다.
언젠가 거실의 활기가 점차 사라져 허전함이 오더라도 괜찮다. 그만큼 가족과의 작은 시간이 쌓이고 쌓인 추억들이 마음 가득 채워줄 테니 말이다. 일요일 오전 8시, 주말이라 다른 식구들은 아직 꿀잠을 자고 있고 나는 홀로 거실 식탁의자에 앉아있다. 집안에 덥고 습함이 느껴져 창을 활짝 열고 아침부터 선풍기 바람을 쐬어본다. 오늘도 무더우려나? 이따가 엄마표 팥빙수를 만들어서 같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