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모라는 이름은

by 사월

아픔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아픔을 사랑하지 못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하는 병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떼어내고 싶지만 떼어낼 수 없다.


나라는 아픔 덩어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님에게는 내 존재 자체가 아픔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둘은 왜 나를 떼어내지 않는가. 밖을 걸어 다니는 마르고, 예쁜,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도 아니고, 티브이나 잡지등에 나오는 돈 잘 버는 연예인, 성공한 사업가. 하다못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아닌 나를. 그저 방에 틀어박혀 밤을 새우며, 안 좋은 생각으로 가득 차 무기력한 나를.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 아빠. 둘은 이제 사랑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사랑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상대를 사랑했기에 상대를 닮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둘은 이제 사랑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걸까?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나를 사랑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할까? 함께한 세월도 적고, 나쁜 말들도 많이 들었다. 예전엔 죽을 만큼 미웠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둘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 같다.


본인이 배 아파 낳았다고 해도, 본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해도, 결국은 남 아닌가. 가족, 부모, 자식이라는 단어에 묶여 사는 것 아닌가? 그 단어가 뭐라고 이런 나를 사랑하는 걸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되어본 적 없고, 될 생각도 없는 나는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예쁜 게 가능한 건가? 아기 때는 울기만 하고, 밥을 먹는 것부터 잠을 자는 것까지 무엇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손이 많이 간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말도 안 듣고, 날이 갈수록 반항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다 걱정이 될 일들만 잔뜩 하고 다닌다. 이상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 좋은 행동을 하면 몰라도, 방 안에 늘어져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관리할 생각은 안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가.


물어보고 싶다. 나를 사랑하냐고. 하지만 들려올 대답이 예상되기에 물어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날 사랑할 것이다. 아무것도 해준 적 없고, 보답한 적 없고, 그 흔한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조차 해준 적이 없는 딸임에도.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약값과 병원비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일도, 내가 도전하고 있었던 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아직도 만들어준다.


겨우 하나뿐인 외동딸이니까. 그런 생각을 어릴 때 잠시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이 문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내가 아프거나, 내가 없으면 못 살 것이다.


고등학생 때,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은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고.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엄마는 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도 살고 싶어서. 지금은 하루하루 내가 병들어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두고 가기 싫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없어지길 바랐던 나는, 지금 살고 싶어 발버둥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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